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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게 하나도 없네.

난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by 김부부

“여보. 미안해.”


길고 길었던 보름이 지나가고 있다.


양가 부모님께 폭탄을 투하한 이후 친정부모님은 수술 전 우리 부부를 불러 함께 밥을 먹자 하셨다.


식사가 이어지는 내내 일상적인 대화만 오고 갔다. 최대한 남편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행동하는 친정식구들의 노력이 느껴졌다.


친정집에 있는 동안 그 누구도 수술에 대하여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집에 돌아갈 때 아빠는 우리 부부에게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둘이 좋아하는 마음이 변함없으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기거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반면 시댁부모님은 하루에 한 번씩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오늘 아들 컨디션은 어떻고, 그래서 정말 수술은 하기로 결정 내렸는지, 아들이 정말 수술한다고 했는지를 반복적으로 물어보셨다. 참다 참다 인내심이 결국 바닥이 난 나는 남편에게 제발 부탁이니 나한테 전화가 안 오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했고, 한동안은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러다 수술 3일 남기고 다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수술날 못 오게 하는데 우리는 가야겠다.”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 수술을 한다니 부모마음에 옆을 지켜주고 싶어 하시는 거는 당연히 알지만 수술결과에 따라 남편이나 내가 겪을 심적 고통도 아직 어떨지 모를 상황에 나 또한 어머님에게 사정을 했다.


“어머니 굳이 오실 필요 없으세요. 어차피 수술하고 다음날 퇴원하는데 제가 수술하고 바로 전화드리게요. “


“왜 못 오게 하니. 어른이 간다는데.”


난 수술 전까지 남편이 이 문제로 스트레스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마음 편히 먹고 해야 할 수술이기에 그냥 시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도록, 남편과 나는 의견을 합의했다.


수술 전날 남편은 고환 주변을 제모를 하고 가야 됐다. 혼자 꼼꼼한 제모는 무리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남편 고환 주변을 면도칼과 연고를 이용해 제모를 해주었다.


제모를 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 거리며 웃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남편이 너무 짠해 보이기 시작했다.


“미안해.”


“모가. 갑자기.”


“그냥. 미안해.”


“됐어.”


더 이상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부부 둘 다 눈물이 터질 거 같아서 아무 말 없이 제모를 마무리하고 잠을 잤다.


대망에 수술날 아침이 밝았고 남편과 나는 손을 꼭 잡고 병원에 도착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아침 일찍 수술스케줄이었기에 병원 오픈시간 전에 병원에 도착한 우리 부부를 보고 문 앞에 서 있는 병원 경비분이 다정하게 도움을 주려는 듯 말을 걸어오셨다.


“오늘 수술이라서 왔는데요.”


“그럼 저기 저쪽으로 산부인과 쪽으로 가세요.”


“아니요. 비뇨기과 수술인데요.”


“우리 병원은 남자가 수술받는 병원 아닌데”


기분 좋게 도착한 병원 앞에서 경비원분 이 한마디 때문에 기분이 상해버렸다. 나보다 남편이 순간 기분이 많이 상한 듯해 보였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


남편이 생전 욱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남편은 많이 화가 나 있었다.


“저희가 알아서 찾아갈게요.”


남편에 말에 당황한 경비분 얼굴도 일그러지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거 같은 분위기에 나는 급히 남편을 붙잡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몰라서 하신 말씀일 거야.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아니 말을 모 저렇게 해.”


“수술 앞두고 열받지 말자... 진정해 여보. “


수술을 앞두고 일이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비뇨기과에 도착하니 간호사가 수술 관련 안내와 우리가 하루 동안 머물 1인실을 안내해 주었다. 이 병원 비뇨기과 수술은 선택권 없이 1인실 입원이 원칙이었다.


입원실에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액을 맞으며 수술 예정 시간 지나도록 무한대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둘 다 핸드폰만 계속 만지작만지작 거리진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 남편은 수술 침대에 누워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무슨 지병이 있어하는 수술이 아닌 오로지 정자를 찾기 위해 남편이 전신마취에 생살을 찢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수술침대에 누워 들어가는 남편 얼굴이 너무 짠해 보였다.


“잘하고 올게.”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나에게 남편은 담담하게 잘하고 오겠다는 말을 했고, 나는 남편 손을 붙잡고 울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남편은 비뇨기과 옆에 붙은 작은 수술실에 들어가고 나는 수술실 옆에 따린 작은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수술하는 그날은 다행히 비뇨기과 외래진료가 없는 날이 여서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병원관계자 외는 아무도 없었다.


수술은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내내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다. 울었다를 반복했다.


내가, 우리 부부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길래 왜 우리한테 이런 시련을 주냐고 온갖 신들을 다 소환해서 화를 냈었다가, 내가 정말 착하게, 희생하며 살 테니 제발 정자를 찾게 해달라고 또 빌었다가.....:


그렇게 한 40분 정도가 지나니 수술방에서 간호사가 나왔다.


“수술은 마무리 단계이고요. 이제 곧 선생님이 나오셔서 짧게 설명해 주실 거고, 남편분은 10분 정도 더 회복하고 나올 거예요. “


“감사합니다.”


간호사분이 수술방에 다시 들어가고 얼마 후 원장선생님이 수술방에서 나왔다. 나는 두 손 모아 간절한 눈빛으로 의사 선생님 앞에 섰다.


“잘 되었나요?”


“흠...... 세세하게 오랜 시간 찾아보았는데 남편분 고환에서는 정자를 한 마리도 찾지 못했습니다. 우선 연구실에서 채취한 세포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는 하겠지만,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내일 아침 외래에서 더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욕이 나왔다. 속으로 온갖 욕이 터져 나왔다. 내 안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세포가 다 살아난 듯 화가 나가 시작했다.


‘저 원장 실력은 있는 거야?’


‘젠장. 병원이 이상했어. 아니 근무하는 사람이 모르는 수술을 하는 병원이 어디 있어.’


‘나한테 왜 이리!!!! 나한테!!! 이제 어쩌라고!!!’


나는 제자리를 맴돌면서 계속 혼잣말을 했다.


화가 당최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신경이 날카롭게 곧 두서 있는데 대기실옆 엘리베이터에서 진분홍색 투피스에 샤넬백을 들고 향수냄새가 진동하는 여자가 내렸다.


그 여자는 누가 봐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비뇨기과 원장실로 들어갔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냥 왜 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내 신세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고, 남편 정자걱정을 하고 있고, 작지 않은 수술비 걱정을 하고 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내가 이러려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게 아닌데......


원장실에 들어간 화려한 여자가 원장 부인일 거라는 나만에 추측과 동시에 원장부인과 상반된 나에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이 모든 게 다 부질없다 생각이 들었다.


그냥 눈물만 주룩주룩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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