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다 구려.
난생처음 비뇨기과 내원이다. 내가 비뇨기과를 올 거라 누가 예상했을까? 참 인생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한 산부인과 본원에 있는 비뇨기과는 2층 구석 아주 조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어렵다. 내 기억엔 그곳은 조명도 어둡고 , 실내디자인은 칙칙하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도 요즘 말로 구렸다. 그냥 다 구렸다. 죄다 우울한 분위기 그 자체였다.
비뇨기과 의사는 원장 한 명이 전부였다. 최근 오래 근무했던 원장이 그만두고, 새로운 원장이 취임하여 진료를 본다고 했다. 매일 진료가 있는 게 아니어서 인지, 대기실엔 남자환자들이 꽤 있었다. 여자라곤 나 혼자였다. 진료를 기다리며 있었던 그날의 대기실의 분위기는 적절한 단어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낯설고 두 번 다시 느끼기 싫은 분위기이었다.
급하게 잡은 예약이어서 그런지 그날 우리 부부가 제일마지막 진료이었다. 굳이 예약을 왜 했을까? 할 정도로 꽤 긴 시간을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진료실에는 딱 봐도 우리 나이 때 인물 훤칠한 젊은 남자가 원장이라고 앉아 있었다. 참고로 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부잣집 아들내미처럼 기름진 2:8 가르마 머리에, 반짝거리는 금테 안경, 시선을 사로잡는 왕 큰 시계, 눈부신 반지까지 이 사람이 원장이라고? 이렇게 큰 병원에 하나밖에 없는 비뇨기과 원장이라고?라는 의문점이 생기게 했다. 실력만 좋으면 되는 거니깐, 이렇게 유명한 병원에 새로 부임한 원장이니깐, 편견을 버리기로 생각했다. 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니깐.
“넘어온 검사결과지를 봤는데 남편분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잠시 남편분 고환 검사해야 하는데 잠깐 나가 있으시겠어요?”
대기실에 나온 지 1분도 안 돼서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고환 검사를 마친 남편의 얼굴은 딱 봐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도 기분 좋은 검사는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 남편은 그날의 고환검사에 대해 본인이 처음 겪어본 비참함이었다고 했다.
“남편분 고환크기등 외관상 문제는 없지만, 정자검사 수치상 비폐쇄성무정자증일 확률이 더 높을 거 같습니다.”
저주다.
저주가 시작되었다.
제발 비폐쇄성무정자증만 아니기를 기도했는데, 저주가 장대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폐쇄성무정자증이라고..... 그렇게 비폐쇄성무정자만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신들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무 말도 없는 남편 대신 나는 참고 있던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무 방법이 없나요?”
“재검사를 해서 결과가 다르게 나온 케이스는 없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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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검사는 필요가 없으세요. 지금 상황에서는 약물도 크게 도움은 되지 않을 거 같아요. 원하시면 미세현미경수술로 정자를 찾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알고 있었다. 수술에 대해서....
병원오기 전 무수히 찾아본 글들 중 수술에 대한 정보를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수술을 우리 부부가 할 거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 단계까지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긍정회로를 쉴세 없이 돌리고 있었다.
“제가 병원진료 오기 전에 찾아본 정보들에서는 시간을 지체할수록 정자채취가 힘들다고 빨리 할수록 좋다고 하던데 맞나요? “
“아무래도 나이 때도 있을시고, 현재 상황이 좋지 않으니, 하실 거면 빨리 수술해서 찾아보는 게 좋기는 하겠죠.”
의사와 나의 대화가 오고 가는 내내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냥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발!!!뭐라고 반응이라도 해봐. 오빠 나도 힘들다고.’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안 하는 남편에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어 지만, 입 밖으로 차마 내뱉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