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힘든 무대
치과.
단어만 봐도 어깨가 올라가는 내게는
공포스러운 곳이다.
‘오복(五福) 중 하나가 치아’ 라는데
나는 그것을 받지도 주지도 못하였다.
아이들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배냇’이‘ 가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아이의 첫 젖니가 나오는 시기가 늦을수록 유치가 늦게 빠지듯이. 치아상태는 그렇게 모든 것이 결정되어서 도리가 없다.
나 역시 그랬다.
치아교정을 할 때 양치를 수시로 하고
치실을 달고 살아도 충치가 생기더라.
큰아이 5살 때부터 치과를 데려갔다.
내가 치과 가는 날 보다 아이 치과 가는 날이
백배는 힘들었다.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며
좀만 참으라고 곧 끝난다고 달래는 일은
진짜 부모로서 보고 있는 것만도 너무 힘들다.
울다가 실핏줄이 다 터지고 기절하듯 잠든 적도 있었다.
아이보다 더 아이처럼 겁내던 나는
진료실에서 쫓겨난 일도 여러 번이다.
그런 녀석이 이젠 커서 영구치 치료를 제법 잘 해낸다.
그런데 두찌 세찌가 시작이다.
힘들어하는 날 보고 간호사언니는 나가계셔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으니 눈 딱 감고 손을 잡고 기도를 연신했다.
치료를 받던 두찌가 꼭잡은 내 손을 놓으라고 뿌리친다.
땀이난다고 손을 놓으란다.
치료를 받던 셋찌가 내 손을 뿌리친다.
그리고는 엄지 검지를 모아 하트를 내게 준다.
겁쟁이 엄마에게 걱정하지말라고 내게 신호하는 듯 했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너무 잘 해냈다. 내안의 아가아가한 7세 꼬마는 어느새 씩씩한 꼬마로 자라 있었다.
아무래도 나만 겁쟁이인가 보다.
오늘도 겁쟁이 엄마는 용감한 아들 녀석 셋과
자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