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흉터

마지막 모유수유의 날

by 백소라

내 오른손 끝에는 10 바늘을 꿰맨 흉터가 있다.

쌍둥이들이 생기기 전,

큰아이가 돌을 막 지났을 무렵이다.


짬이 날 때 집안일을 바삐 해내야 했던 나는 그날도 여념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려는데 고무장갑이 거추장스러워 후다닥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바삐 손을 움직였다.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은 피범벅이 되어있었다.


"어머 큰일 났다"


설거지를 하는 중에 컵이 깨졌고 그 깨진 컵 사이로 내 손 피부가 찢어져있었다.


겁이 많던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힘도 없이, 정말 혼잣말처럼 '큰일 났다'라고만 조용히 말했다.


내 목소리를 듣고 애들 아빠는 무슨 일이냐며 달려왔다. 내 손을 보고는 너무 놀라 수건으로 내 손을 칭칭 감더니, 그 추운 겨울 아이를 점퍼에 싸서 안고 슬리퍼만 신은 채 빨리 나오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급히 차에 올라타 응급실로 향했다.


나는 내 손 상태를 수건 너머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수건 속에서 욱신거리는 손을 움켜쥔 채 응급실에 도착했다. 한 손에는 점퍼에 싼 아이를 안은 애들 아빠가 다급하게 빨리 좀 봐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우리 번호표는 30번쯤 되었다.


응급실을 관리하던 관계자는

시급한 응급환자 케이스에 내가 해당되지 않아서

순서를 지켜야 하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배고파할 아이가 걱정스러워,

나는 내 손보다 아이를 살피느라 바빴다.


드디어 만난 의사는 꿰매야 한다며

항생제를 써야 한다고 했다.
모유 수유 중이던 나는 물었다.
“그럼 수유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분간은 중단하셔야겠어요.”


이미 단유를 생각하던 시기였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날 줄은 몰랐다.
아이와의 가장 깊은 교감이

그렇게 멈춰버릴 줄은…


그래서 의사에게 부탁했다.
“그럼 아이에게 마지막 수유만 하게 해 주세요.”

고맙게도 의사는 기다려주기로 했다.


나는 차로 가서 아이를 안고 눈을 맞추며 말했다.


“아가, 엄마가 이제 네게 젖을 물리기 어렵게 됐어.

엄마가 다쳐서 미안해.

엄마도 너랑 좀 더 교감하고 싶은데,

이게 우리 마지막 수유가 될 것 같아.

엄마가 얼른 나아서, 엄마 젖 대신

맛있는 분유로 우리 아기 튼튼하게 해 줄게.“


하얗게 입김이 섞이던 그 겨울,

아이의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 눈에선 이유 모를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지만,

내 입은 미소 짓고 있었고 아기도 나랑 눈 마주친 채

먹다 웃다 먹다 웃다를 반복했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와 눈 마주치며 함께 교감했던 그 순간말이다.


아이는 내게 눈으로 말하는 거 같았다.

"엄마 괜찮아요~ 아프지 마요~"


아이에게도 그 시간은 무엇보다 행복했던 시간이었으리라. 그런 우리 둘의 시간을 내 실수로 끝내게 된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날 응급실에는 정형외과 의사만 있어서 흉터가 생기게 꿰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애들 아빠는 흉이 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아이가 염려스러웠던 나는 괜찮다며 빨리 꿰매고 집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내 오른쪽 손끝에는 10 바늘을 꽤멘 상처가 또렷이 남아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흉터는 남아 그날의 기억을 되살린다.


다행히 신경을 지나지 않아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아들을 셋이나 낳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던

10년 전의 초보엄마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이미 모성애로 가득 찬 엄마였다.


10년이 지난 아들 셋 엄마는,

여전히 이 흉터를 보며 그날을 떠올린다.


첫째와의 마지막 수유.

하얗게 입김이 서리던 겨울 차 안.

아이와 나누던 그 눈빛.


흉터는 아물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기억은 더 선명해졌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어갔다.


손끝의 흉터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몸에 무언가를 새기는 일이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0화아들의 남자 속옷을 사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