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책
낮 비행기라 여유가 있는 나는 푹 자고 일어난 아침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한다. 어제와 달리 햇살이 너무도 좋아 집에 돌아가기 살짝 아쉽다. 달리 생각해 보면 집에 돌아갈 날씨로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호스트가 아직 집에 있는 것 같아서 문자를 보낸다.
저 30분 정도 짐 싸면 애월해안길 산책 하실래요?
네네 그래요.
좋아요~ 옆 방 게스트 승민씨도 산책 좋아해요~ 같이 가요.^^
애월해안길을 걷는다. 이곳에 도착한 첫 날도 이 길을 걸었다. 그날은 낯설고 설레는 새로움이었다면 오늘은 동네 마실을 하는 것 같은 친숙함이다. 그때와 다른 게 또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 호스트 아벨과 옆 방 게스트 승미씨와 함께라는 것.
애월해안길 초입에 있는 그야말로 바다 감상용 벤치에 앉은 아벨과 승민씨의 백과 흑의 의복이, 안경이, 자유롭게 올린 한쪽 다리의 선이, 모든 것이 조화롭다. 자연을 배경으로 우리 셋은 자연보다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그래서 좋다.
애월에 온 첫날, 홀로 해안길을 걸으면서 확 트인 바다 전망 2층집을 보았다. 뼈대만 있어서 아직 집이라고 하기는 무색하지만, 나는 저 뼈대가 참 예뻐 보였다. 그날은 그냥 지나쳤지만 오늘은 용기를 내본다.
"저 이 집 한번 올라가 봐도 될까요?"
"그럼요."
"주인이 있을 텐데 괜찮을까요?"
"올라가 보기만 하는 건데요, 뭘. 지금은 공사를 멈춘 것 같기도 하고요."
아벨이 먼저 첫 계단을 내딛는다. 잘 모르는 누군가의 집들이를 가는 마음으로 뒤따른다. 아벨은 뼈대만 보고도 여기는 주방, 저기는 화장실 등의 공간을 직감적으로 안다. 집을 지어본 사람이라 보일 것이다.
우리는 함께 그 집 2층에 걸터앉는다. 더 멀리까지 보인다. 숨이 트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짓다 만 집' 같다고. 아니면 '짓고 있는 집'이라든가. 모두 미완성인 것이다. 하지만 뼈대를 갖추고 있으니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는 있겠지만 결코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다 지어지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다. 나나 당신이나 우리가 지금 어떤 모습이든 자신만의 집 짓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이미 집을 완성했거나 혹은 완성했다고 믿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그 집을 무엇으로 채워나갈지는 살면서 하나씩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죽기 전까지 채워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니 자만할 수 없지 않을까.
오늘 이 글을 쓰는 것도 나에게는 집 짓기다. 하나의 창을 내는 일이다. 애월에서 나의 집이 되어준 제주평강에 방명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