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공터
오사다 히로시
공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네도 흔들나무도 없었다. 벤치도 없었다. 나무 한 그루 없었기에 나무 그늘도 없었다. 세찬 비가 내리면, 여기저기 커다란 물웅덩이가 생겼다. 공터의 둘레는 언제나 더부룩한 풀숲이었다.
네가 처음으로 도마뱀을 본 건, 공터의 풀숲이다. 처음으로 하늘소를 잡은 것도. 너는 공터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야구를 배웠다. 처음으로 분해서 울었다.
(중략)
공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던, 아무것도 없던 공터에는, 다른 어디에도 없던 것이 있었다. 너의 자유가.
공터에서 보낸 7박 8일. 나는 매일 바다를 보았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걸었다. 낯선 이들과 친구처럼 마주 보며 이야기했다. 혼자서 밥을 먹어도 외롭지 않았다. 노을을 보며 걷다가 밤이 되어 별을 보았다.
나를 오래도록 알고 지낸 것처럼 대하는 두 고양이를 만났다. 두 고양이처럼 오래도록 알고 지낸 것 같은 아벨을 만났다. 그리고 정말 오래도록 알고 지낸 친구, 민희를 만났다. 나의 공터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았다. 나의 공터에는 한동안 내가 미뤄두었던 모든 것이 있었다.
제주는 나의 공터였다. 이제 나는 공터에서 집으로 향한다. 자유만을 누렸던 공터에서 다시 책임과 의무의 공간인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쉽지 않다. 나는 공터에서 한동한 미뤄두었던 모든 것을 누렸으므로. 이제 다시 일상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힘이 있다.
자유를 갈망하더라도 책임과 의무를 회피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다.
사진/제주 오름을 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