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 voyage!
<겨울에 꺼내먹는 나홀로 제주여행>의 마지막 글입니다. 이 겨울에 햇살 한 줌을 당신에게도 건네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깊은 마음속 응달에 햇살 한 줌 혹은 한가닥 가닿았을까요? 그랬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작년 10월 7박 8일간 제주도에서의 놀멍 쉬멍 걸으멍 기록입니다.
만일 당신이 같은 곳으로 여행을 떠날지라도 우리의 여행은 같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여행은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더욱 흥미진진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여행은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진짜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하지요. 흔히 음식에 대한 좋은 평가는 음식을 제공하는 환경, 음식의 맛과 질, 그리고 함께 먹는 사람이 누구냐와 같은 요인들을 종합하여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음식의 결정적인 요인은 그 음식을 먹고 난 후, 몸 안에서 어떤 유익한 변화가 일어나느냐일 것입니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가의 메뉴를 먹었다고 하더라도 입맛에 맞지 않거나 몸에서 탈이 난다면 나에게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별다를 것 없는 소박한 밥일지라도 몸에서 소화흡수 과정이 이루어지고 에너지를 공급하며 건강을 유지시켜 줄 때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지에서는 다소 심심했다손 치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추억하고 곱씹어볼 때 여러 생각과 감상을 촘촘하게 불러일으키는 여행이라면요? 나에게 좋은 여행이란 그런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좋은 여행에 대한 당신만의 정의가 있을 테지요. 다시 나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네 장의 사진을 연달아 보게 될 텐데요.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본 다음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여기 특별할 것 없는 풍경 사진 1장이 있습니다. 제주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이에요.
무엇이 보이나요? 어디에 시선이 머무나요? 하늘, 구름, 바다, 파도, 바위, 백년초, 어디에 시선이 머무나요? 당신의 경험과 연결 지어지는 또는 사유를 끌어내는 것이 있을까요? 같은 방식으로 아래 3장의 사진을 봐주세요.
어떤가요? 뭔가 특이점을 발견하셨나요? 단번에 알아챘을 수도 아니면 몰랐을 수도 있겠죠.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사실 2~4번 3장의 사진은 모두 1번 사진의 조각들입니다. 여행 마지막 날 애월해안길에서 찍은 풍경 사진 한 장을 확대하여 부분적으로 잘라내고 필터로 색을 조정한 사진들이죠.
1번 사진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보지 않습니다. 하늘, 구름, 바다, 검은 돌, 마른풀, 백년초, 각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릅니다.
나는 이 사진에서 연둣빛의 가시 달린 백년초가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백년초의 노란 꽃이 마치 달맞이꽃처럼 눈 부셔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 사진을 확대에서 보니 보라색 열매가 보이는 것이 아니겠어요.
아! 1주일 사이에 열매들이 맺힌 겁니다. 첫날 산책할 때, 열매는 못 봤고 살짝 핀 노란 꽃 두세 송이만 보았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날, 이 사진을 찍을 때 꽃이 더 많이 피었구나만 생각한 것이죠.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는 순간에 보지 못했던 열매를, 기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제 마음에도 하나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조각난 사진들처럼 여행은 부분적이고 개별적인 것입니다. 여행자의 관점과 마음 상태에 따라서 같은 장소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당신은 당신에게 맞는 화풍으로 당신의 여행을 다시 그려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당신만의 선명한 여행 현장보다 시간의 필터를 투과하여 그려진 여행의 풍경이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여백을 남기는 걸 잊지 마세요.
거기에 필수 덕목 하나. 여행자의 너그러움 혹은 관대함, 무엇으로 불리든 좋습니다. 자신을 비롯한 만나는 모든 사람, 풍경, 상황 들에 관대해지세요. 그리고 보이는 것들의 이면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여행은 너그럽고 사려 깊어질 것입니다.
B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