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억 벼리기

첫 그물코, 희택이

by 조은영 GoodSpirit

'그물이 삼천코라도 벼리가 으뜸이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재료가 많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여 적절하게 결속하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벼리'는 그물의 위쪽에 코를 꿰어 잡아당길 수 있게 한 줄로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벼리가 있어야만 그물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벼리는 '글에서 뼈대가 되는 줄거리'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벼리가 있다. 도리어 벼리가 당겨줘야 할 그물코들이 성글고 시원찮은 상태이다. 유년의 기억은 대개 흐릿하고 두리뭉실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선명하게 드문드문 떠오르는 장면이나 말들을 모아서 그물코를 짜듯 하나하나 엮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이 과정에 '기억 벼리기'라는 생경한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앞서 말한 '벼리'와 더불어 '벼리기'로 더 촘촘한 의미를 덧대어서 말이다. '벼리기'는 금속에 열을 가한 상태에서 두들겨 누른 힘으로 결정이 조밀하고 단단한 금속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그 치명적인 뜨거운 쇳덩어리를 차가운 쇳덩어리로 두드려 형태를 만들어내는 벼리기. 나의 '기억 벼리기'는 열병 같던 붉은 어제에서 냉정을 회복한 오늘의 내가 되는 것이다. 나의 '기억 벼리기'는 촘촘한그물을 유년의 바다에 던지고 기억이 걸려든 순간 벼리를 당기고 힘껏 끌어당기는 일이다.


기억을 벼리기 위해서는 유년의 기억을 소환해야 한다. 소환된 기억은 조각난 파편들이다. 빠진 조각이 많다. 빈 자리를 채우려면 엄마의 증언이 필요하다. 내 유년의 어른으로 살아갔던 엄마는 내가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장소와 사건에 대해 비교적 선명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난밤, 잊을 수 없는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희택이 엄마. 이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짙은 보라색 점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던 그녀는 나보다 두세 살 어린 희택이의 엄마다. 보라색 점은 얇고 부드러운 보통 피부와 달리 매우 두꺼워 얼굴 전체가 무척 도드라져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튀어나와 보였다. 그녀는 지적장애가 있는 남편이 있었고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 희택이는 앞니가 두어 개 빠진 채로 항상 웃고 다녔다. 이가 빠진 것만 빼면 자기 아버지를 똑 빼닮았다. 희택이는 여름이면 웃통을 벗고 다니곤 했다. 배꼽이 시든 꽃을 매단 아기호박처럼 크고 동그랬다. 나는 그런 희택이를 동네아이들과 함께 놀리곤 했다. 그래도 희택이는 우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앞니가 두어 개 빠진 채로 웃었다. 그 잃어버린 앞니는 나와 마찬가지로 다시 자랐을 터인데 내 기억 속 희택이는 항상 앞니가 없다. 희택이 가족이 우리 동네에는 어떻게 오게 된 것일까? 불현듯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희택이 엄마 기억하지?"

"그렇지. 얼굴 때문에 어디서 일을 못하니까 용돈이라도 벌라고 엄마가 이틀에 한 번씩 우리 집 청소를 맡겼잖아."

"아, 그래? 근데 어릴 때 우리 집이 깨끗했던 기억이 없네."

"청소는 대충 하고 놀았으니까 그렇지. 하하"

엄마는 웃는다. 아무리 돈을 줬다 한들 깨끗한 집청소의 책임이 비단 희택이 엄마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웃음이다. 엄마는 항상 아빠가 벌이는 사업 뒤치다꺼리로 사실 더 바쁜 사람이었으므로 깨끗한 집청소의 책임이 엄마에게 있지 않다는 것 또한 나도 안다. 하하. 나도 함께 웃는다.

"엄마가 인정이 있었네."

"네 엄마가 엄청 인정 많은 사람이야."

"그건 그렇고 그런데 어떻게 우리 동네에 이사 왔지?"

"자동차 시트커버 구슬 공장할 때, 일 잘하는 청년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양구였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성은 박 씨야. 박씨가 성실하고 일을 참 잘했어. 키도 크고 건장한 데다 인물도 좋았지. 어느 날 박씨가 우리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어떻겠냐고 묻더라. 그래서 좋다고 누구 아는 사람 있나 물었더니 매형한테 얘기해 보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지. 그렇게 박씨 누나 식구들이 우리 동네로 온 거야."

"젊은 청년이 마음씨가 좋네. 누나 가족을 챙기고."

"그러게. 누나 얼굴이 그렇다는 말은 전혀 안 해서 처음에 많이 놀랐지만 셋방을 하나 주고 희택이 아빠는 공장 허드렛일을 맡기고 월급을 줬어. 나중에 생각해 보니 박씨가 얘기를 안 한 딱한 사정이 이해가 됐지."


셋방이 기억난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정미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지어진 15칸짜리 단칸방들. 우리 집 대문을 빠져나와 회색 벽돌담을 끼고 왼쪽으로 꺾으면 단칸방들이 줄지어 있다. 단칸방들에는 대부분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 직원들이 세 들어 살았다. 세 들어 사는 입주민들이 몇 년씩 살다 집을 비우면 엄마는 인부를 한 명 고용해 직접 도배질을 했다. 일하러 나설 때 눈에 보이는 딸이 있으면 데리고 가 일당을 주고 일을 시켰다. 도배일이 날이면 날마다 있는 일이 아닐뿐더러 썩 좋은 용돈벌이라 기분 좋게 따라나섰다. 도배지를 바닥에 펼쳐놓고 넓은 붓으로 풀칠하는 일은 재밌기도 했다. 내가 도배를 거들었던 단칸방들에 누가 살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집에 희택이네가 살았구나.


"근데 희택이가 가족을 먹여 살린다더라.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제빵기술을 배워서는 빵집에서 일을 한다더라고. 너 대학교 다닐 때."

나보다 두세 살 어렸던 희택이가, 아기호박 같은 배꼽을 달고 다녔던 희택이가, 바보라고 놀려도 실실 웃기만 하던 희택이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가족을 부양했구나. 희택이를 놀렸던 것이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딘가에 자신의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을 희택이가 고마웠다.


keyword
이전 01화초식동물 같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