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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는 것

그럼에도 좋은 기억

by 조은영 GoodSpirit

어디선가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그리움보다 죄책감이 크면 추억이 못된다는. 힘겨운 유년이었음에도 좋은 추억이 많은 걸 보면 그 힘겨움이 내 잘못 때문이 아님은 분명하다. 허나 추억이 있다 할지라도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다. 좋은 추억이 있는 것과 그리운 건 다르니까. '그립다'의 정의는 뭐랄까.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것이 있던 순간으로 잠시나마 돌아가고 싶다.'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된다.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행복감은 지금 대체불가능한 것이 없다. 그래서 그 시절을 추억으로 소환하는 것 자체로 충분히 좋을 뿐 그립지는 않다. 지금이 더 좋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에게 어린 시절의 활력과 생기는 둔화되었지만 그럼에도 지금 내 나이에 걸맞은 활력이 있기 때문에 충분하다.


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 집 밖을 싸돌아 다니는 아이였다. 일종의 보호본능이었지 싶다. 초등학교 때는 놀이삼매경에 빠져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방만 던져놓고 나왔다. 그리고는 동네아이들을 불러 모아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술래잡기, 숨바꼭질, 소꿉놀이 등을 하다가 해 떨어지면 집에 들어왔다. 고층건물이 없던 옛 동네에는 골목골목 다니면서 "oo아, 놀자!" 부르기만 하면 튀어나올 수 있는 주택이라 언제든 놀 사람을 찾는 건 쉬웠다. 또한 마주치던 어른들은 모두 아는 동네사람들이었기에 사실 나에게 동네라는 곳은 해가 떨어져도 안전한 나의 구역이었다.


중학교 때는 동네 밖이라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자전거와 버스라는 이동수단을 능숙하게 활용하게 된 것이 한몫했다. 당시 재학 중이던 송원여중 근처 88 롤러스케이트장에 다니며 롤러스케이트 실력을 수준급으로 연마했다. 돈 없는 날은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며 어디든 쏘다녔고 용돈을 받으면 무등극장이나 제일극장에서 기다리던 개봉작을, 아세아극장에서는 개봉을 놓쳤던 영화를 더 싼값에 동시상영으로 보았다. 그 무렵 나는 어떤 면에서는 안정효 소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병석 같았다. 할리우드 영화의 세계는 내가 닿을 수 없는 이상적 세계와 짧은 순간 스칠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두운 영화관에 앉아 내 시야를 꽉 채운 커다란 스크린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의 현실은 잊히고 스크린 속 세상이 당면한 현실이 되었다. 청소년기에 열렬히 좋아했던 리버 피닉스, 톰 크루즈, 조니 뎁. 그중 리버 피닉스는 요절하여 나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고 반면 톰 크루즈와 조니 뎁은 장수하는 배우이긴 하나 사생활 면에서 자주 구설수에 올라 실망감을 안겨주어 이제는 내 마음에서 떠난 지 오래다. 하지만 남은 게 있다면 그들의 모국어인 영어를 번역된 자막이 아닌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싶어 영어공부를 밥 먹듯이 한 덕분에 영어실력은 남아 밥벌이에 작게나마 보탬이 된달까.


고등학교 때는 활자의 세계로 입문했다. 홍콩영화를 좋아했던 똑 떨어진 단발머리 친구와 어느 날 영화잡지 부록으로 나온 포스터와 브로마이드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가 내가 제안했다. "내가 <로드쇼>를 살게. 네가 <스크린>을 사." 그렇게 우리는 매월 각자 구입한 잡지를 먼저 훑어보고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나 누가 무엇을 스크랩 지를 정했다. 그러다 잡지에 나오는 인터뷰, 영화 소개와 평론까지 활자의 세계에 본격적인 흥미가 붙었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고 나면 일렁이는 감정과 생각들을 다듬어 나름의 평론을 쓰기 시작했고 영화평론가의 꿈도 잠시 꿨던 적이 있었다. <스크린>이었던가? 조니 뎁의 인터뷰 기사였다. 꼭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그레고르 잠자. 카프카의 <변신>에서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 역할을 학고 싶다고 했다. 난 서점에 달려가 <변신>을 구입하고 단숨에 읽었다. 그레고르 잠자에 대해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때부터였을까. 친구와의 만남의 장소는 무조건 무등서점, 충장서림 같은 서점으로 정하고 친구를 기다리면서 책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종종 구입했다. <어린 왕자><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같은 동화 같은 소설부터 헤르만 헤세, 카프카의 소설에 심취하고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상당수의 여고생들이 누리는 문학적 감수성이 나에게도 다분히 자연발생했다. 친구들과의 깊은 대화는 말보다는 책 속의 좋은 문구를 인용하기도 하며 편지로 주고받는 일을 즐겼다.


유년시절 추억에서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내 취향은 꽤 어른스러웠는데 가장 먼저 반복청취를 하며 빠져들었던 노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는 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탔던 이상은이 나의 아이돌이 되었다.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꾸준히 그녀의 음악을 사랑했고 지금도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좋아한다. 엔리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들과 최유리, 잔나비, 정밀아, 강아솔, 시와 같은 맑은 음색도 좋고 최백호의 허스키한 음색도 장기하의 건들건들한 음색도 좋다. 마음에 닿는 노래라면 무엇이든 좋다.


친구, 놀이, 영화, 책, 음악은 내 유년을 형성하는 의미 있는 촉매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평화롭지 않던 어린시절이 지금의 나의 행복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다. 내 행복은 스스로 찾아야 했던 유년의 나는 주도적으로 행복을 만들어갔다. 어쩌면 결핍이 이끄는 두 가지 삶, 곧 쭉 결핍된 삶을 살아가거나 혹은 결핍을 제 힘으로 채우는 삶을 살아가거나. 결핍은 나에게 행복은 결국 타자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채워야 하는 것임을 일찍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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