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씨앗 날다
민들레 홀씨는 멀리 떠나고 싶다. 그런데 민들레 홀씨는 사실 민들레 홀씨가 아니다. 우리는 민들레 씨앗에 붙은 하얀 관모를 '포자'라고 하면서 민들레 씨앗을 '홀씨'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 홀씨는 꽃이 피지 않는 생물에서 무성생식을 통해 만들어지며, 보통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고사리, 버섯, 곰팡이 등이 홀씨로 번식한다.
그러나 민들레는 꽃이 피며, 암술과 수술의 수정을 통해 씨앗을 맺는다. 노랗거나 하얀 민들레꽃이 시들어 떨어진 자리에 맺힌 씨앗에는 솜털처럼 하얀 관모가 달려 있다. 그 씨앗은 마치 새하얀 무대의상을 입고, 곧 있을 군무의 대오를 갖춘 무용수들의 토슈즈 같다. 준비가 된 민들레 씨앗은 솜사탕처럼 자신을 부풀려 지나가는 아이들의 눈길을 유혹한다. 그러나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듯, 민들레씨앗은 낮은 지면에서 어떻게든 한 뼘이라도 더 올라서려는 요량으로 꽃대를 밀어 올린다. 보통 꽃들은 꽃대를 다 밀어 올린 뒤에야 꽃을 피우지만, 민들레는 다르다. 꽃이 져도 멈추지 않고, 꽃대는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자란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군무를 오래도록 추기 위해 멀리멀리 날아가려는, 작고도 확고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민들레 씨앗의 바람을 알아보는 종이 있다. 인간의 아이들. 아이들은 민들레 씨앗을 보면 무조건 꺾는다. 그리고는 높이 들고서 있는 힘껏 '후우'하고 분다. 바람에 의해 멀리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은 제 영토, 곧 태생적 경계를 떠나 날아간다.
나는 날고 싶은 민들레 씨앗이었다. 나의 바람은 바람을 타고 멀리 빛 쪽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나는 19년간 고향땅에 뿌리를 내린 민들레 같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다니며 살았다. 대학, 직장, 선교사업, 결혼 등으로 목포, 서울, 부산, 대구, 김해, 제주, 인천, 화순, 영월, 지금의 정읍까지 참 많은 곳을 누볐다. 어디든 언제든 떠나는 것은 나에게 두렴이 아니라 설렘이었다. 나는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직 어디에도 뿌리를 내릴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이주를 준비한다. 정읍에서 10년을 살면서 좋은 이웃들과 동료들, 강사로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안정적 상황이지만 2년 후 제주도에서 3년살이를 할 계획이 있다. 그때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50대가 되겠지만 두렵지가 않다. 빛으로 한껏 부푼 관모를 메단 민들레 씨앗처럼 믿는 구석이 있다. 나는 나를 믿는다.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온 나의 의지와 분별력, 그리고 통찰을 믿는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게 이끌어줄 주의 인도하심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