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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뿌리가 있는 사람

뿌리를 뻗다

by 조은영 GoodSpirit

식물은 자란다. 흙, 물, 심지어 돌에서도 자란다. 나는 길을 걷다 갈라진 시멘트의 좁은 틈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종종 마주한다. 포장된 길의 균열 사이로 씨앗이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면 흙에서 자라는 것일까, 돌에서 자라는 것일까. 그걸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요한 건 자신을 옭아매는 단단한 시멘트를 감당하며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운 일인데 말이다.


작년 5월 이른 아침 설악산 울산바위에 오르던 날이었다. 자욱한 안갯속에 물보라 같은 잔비가 바람을 타고 흩뿌려지던 날이었다. 기세 등등한 바람은 펼쳐진 우산과 바람막이 점퍼에 달려와 파다닥 파다닥 부딪고 출렁였다. 이런 날씨에 올라갈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우산을 접자 바람은 좀 더 매끄럽게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스쳤다. 팽팽한 마찰로 인한 잡음은 사라졌다. 나는 바람을 사랑한다. 피부에 와닿는 모든 바람을 환대하니 바람도 그 마음을 알아주는 걸까. 산길을 오를수록 비와 안개는 걷히고 바람도 잠잠해졌다. 외국인 등산객들이 많이 보였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에게서 영어뿐 아니라 독일어, 프랑스어 등 여러 이국 언어들이 흘러나왔다. 외국인 등산객들이 이곳을 이렇게 많이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울산바위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다시 강해졌다. 울산바위는 '우는 산'이라는 의미라는데 과연 우는 소리가 났다. 거대한 기암괴석 여기저기를 바람이 부딪고 나오며 만들어내는 소리다. 관악기에 바람을 '후우'하고 불어넣으면 금관이냐 목관이냐에 따라 악기의 형태, 폭과 길이, 구멍의 위치에 따라 소리가 다 다르다. 넓게 펼쳐진 병풍처럼 울산바위를 타고 흐르는 바람 소리는 벽면에 설치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관을 통해 퍼져 나오는 소리처럼 깊은 울림이 있다. 그 소리와 나를 뒤흔드는 바람에 압도되어 잠시 등반용 철제 계단에 기대어 앉은 순간 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경사진 바위벽 틈에서 자라는 작은 나무였다. 단단한 바위 좁은 틈바구니에 바람이 실어다준 몇 줌의 흙만으로 어떻게 작은 풀꽃도 아닌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질문이 일었고 얼마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세계테마기행을 보면서 답을 찾았다. TV 화면에 호주 내륙 아웃백 석회동굴의 모습이 나왔다. 석회동굴 위에서 자라는 식물의 뿌리가 동굴 암반을 뚫고 동굴 바닥에 있는 깨끗한 지하수까지 기다란 실 같은 뿌리를 뻗고 있었다. 여행자는 말했다.


"이 가느다란 뿌리가 물을 얻기 위해 바위를 뚫은 거예요. 바로 식물의 뿌리에서 산이 나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산이 돌의 광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돌을 부식시키고 풍화시켜 흙으로 만들어요. 그렇게 구멍을 뚫고 물을 얻으러 뿌리를 내린 것이죠."


한번 일었던 질문은 얼마동안이고 내 어딘가에 남아있다가 때가 되면 짠! 하고 새로운 깨달음으로 나를 인도한다. 울산바위를 오르는 길에서 만났던 나무는 자신의 뿌리로 바위를 풍화시켜 성장한 것이다. 좁은 돌틈에 자리 잡은 씨앗은 애당초 누울 자리가 못 된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싹을 틔우기 위해서 온힘을 다해 먼저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돌을 조금씩 야금야금 흙으로 풍화시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영양분을 얻을 토양을 확보했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뿌리가 바위를 풍화시키느라 최선을 다하는 동안 햇빛과 공기와 물이 가세해 풍화를 더 빠르게 돕는다. 결국 변치 않을 척박한 환경에도 낙담하지 않고 기를 쓰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과 닮았다. 아니 인간이 식물을 닮은 건가. 신은 비유와 상징을 좋아해서 인간에게 모든 자연 현상을 통해 인간의 속성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비유와 상징들을 곳곳에 심어놓았다. 인간이 그것을 발견하고 깨달을 때마다 기쁨을 누리도록 말이다.


나는 온실의 화초보다는 바위산 경사면의 나무를 닮았다. 온실의 화초는 뿌리가 없으니까. 나에게는 뿌리가 있다.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낼 수 있는 식물의 뿌리가 있다. 오늘도 나는 뿌리를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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