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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싫었던 나

내 방식대로

by 조은영 GoodSpirit

국민학생 시절, 운동회 날이면 전교생이 학년별로 예외 없이 50m 달리기 시합에 참가해야 했다. 운동장 이곳저곳에서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트랙 한편에서 달리기 시합이 이루어졌다. 나는 달리기 시합이 싫었다. 잔뜩 긴장한 채 출발선에 서서 화약총 소리에 튕겨나가 줄이 처진 결승선까지 내달려야 했다. 그 짧은 시간의 달리기로 1,2,3등을 정해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고 상품을 주었다. 탕! 소리에 주눅이 들어 나는 매번 출발이 한발 늦었다. 앞서 달리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보면 어차피 늦었는 걸 하며 온 힘을 다해 뛰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도 지면 더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장을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운동회인지 가을 운동회인지 한 발이 늦었서도 한 번은 열심히 뛰어보자 싶어 힘껏 달렸다. 손등에 3번 도장을 받았다. 선생님이 내 오른손을 잡고 손등에 딱딱한 도장을 꾹 눌러주자 도장이 선명하게 찍혔다. 3번 도장을 받고 3번 대기줄에 줄을 섰다. 1번은 1번 줄에 2번은 2번 줄에 섰다. 긴 줄이 이어졌다. 이 도장이 뭐라고 어떤 아이들은 의기양양했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중에 가진 자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처음 도장을 받았어도 하나도 뿌듯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손등 위 숫자 3이 뭉개지고 흐릿해질 때쯤 내 손에는 3등짜리 상품이 쥐어졌다. 공책이었나 연필이었나 지우개였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3등이라서보다는 1등이든 2등이든 다 쓰면 버려지고 잊힐 소모품들이라서. 나 역시 소모되어 잊힐 값싼 상품들과 다를 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나는 공부에서도 경쟁하지 않았다. 남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한 반에 5~60명으로 꽉 찬 교실에서 나는 그렇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학생처럼 지냈다. 모범생도 아닌 문제아도 아닌 평범한 중간으로 지냈다. 튀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 무리 지어 놀았던 친구들은 모두 다 실업계 고등학교로 갔고 나 혼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신기하게도 딱 중학교 때만큼의 중간 성적을 유지했다. 한 가지 제법 잘하는 과목은 영어였는데 그저 재밌어서 했을 뿐이었다. 좋아하는 할리우드 영화배우의 말을 자막이 아닌 나 스스로 이해하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으니까. 한 번은 고등학교 친구가 내게 말했다. "모의고사 영어 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영어선생님이 우리 반에 너를 데리고 와서 자랑을 했잖아." 나는 그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영어를 좋아하게 된 것이 그 영어선생님과 전혀 관련이 없어서였을까. 그 순간 영어에 대한 나의 순수한 소망이 그저 성적을 위한 경쟁의 결과로 전시된 치욕스러움이었을까. 나는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자랑이 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뭐든 좋아야 동기부여가 되는 나는 삶에서 눈부신 성취나 업적을 이룬 것은 아니다. 좋아서 시작했어도 아니다 싶으면 금방 두 손 탈탈 털어버린 성격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그것도 내 방식이고 그럭저럭 사는 재미가 있다.


그림-르네 마그리트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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