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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를 허물다

어둠을 밝히기 위해

by 조은영 GoodSpirit

유년의 집 대문을 열고 곧장 앞길로 100보쯤 걸어 나오면 얼마간의 공터가 있었다. 공터는 여러 갈래길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공터 오른편 10시 방향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지 공장이 있었다. 한지 공장이 망했을 때 자동차시트용 나무 구슬을 깎는 공장도 되었는데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한 번은 우리 집 마당에 있던 연못을 없애고 열대어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에 자동차용품점을 열기도 했었고 한적한 시골에 들어가서는 앞산을 깎아 조경용 나무를 심고 양어장도 지었다가 양계장까지 했다. 물론 그 어디에서도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영원할 것 같던 화수분, 곧 할아버지의 유산은 끝내 마르고야 말았지만 꽤 오랜 시간 버텨주었기에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가산을 탕진해 가며 언제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지 않아 폐업하면 돈 대신 남는 것이 있었다. 바로 처리해야 할 물건들이다. 당장 구매자가 있는 물건들은 팔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은 버리면 그만이지만 어딘가 혹은 언젠가 쓸 데가 있을 법한 물건들은 창고에 들어갔다. 빈방들이 창고였고 창고는 언제나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자녀들이 모두 학업과 취업 등으로 집을 떠났을 때 아버지는 독단적으로 전원생활을 결정하고 전남 곡성군 오산면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단독주택을 지었다. 그리고 집 바로 옆에 집보다 더 큰 창고를 지었다. 자동차용품점에서 팔지 못한 재고가 그대로 아버지의 창고로 들어갔다. 가구를 새로 바꾸면 낡은 가구가 창고로 들어갔고 사용하지 않는 그릇들, 옷가지들, 사용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가전제품 등이 창고에 쌓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왜 끝도 없이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면서 무엇을 이루려 했을까. 무언가를 생산하여 자신의 효용성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의 생산물은 역으로 그를 좌절시켰다. 생산물은 항상 잉여물이 되어 창고신세가 되었고 결국 그도 잉여인간으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창고는 어두웠고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게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아버지 역시 창고에 어지럽게 놓여있던 잉여물이었으며 동시에 잉여물을 가둔 창고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많은 장점과 능력들을 결국 제대로 쓰지 못하고 창고에 아무렇게나 처박아두며 자신의 세상이 어두운 것을 한탄하며 지냈다. 그렇게 스스로를 가두는 창고가 되었다.


내게도 창고가 있었다. 물건을 쉽게 정리하지 못했다. 애들이 열렬히 좋아했던 레고들을 나중에 찾는 때가 오겠지 하며 커다란 박스에 차곡차곡 쟁여두었다. 즐겨 입던 옷을 나중에 다시 입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옷장 구석에 걸어두었다. 아이들 어릴 때 종종 다녔던 캠핑 용품들도 베란다 한쪽 수납공간에 꽉 차있었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언젠가는 빛을 볼 때가 오겠지 하면서. 하지만 그 물건들이 빛을 보려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접기로 했다. 지난 1년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비우기로 말이다. 그냥 버리기는 자원순환에 이롭지 못하므로 지인의 권유로 2년 전 처음 당근에 물건들을 내놓았다. 당근 덕분에 합리적인 방식으로 잉여물을 대거 정리했다. 그렇게 나의 창고를 허물었다. 이제는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무조건 정리하기 때문에 집이 가벼워졌다. 항상 책이 계속 늘어나는 게 문제였는데 깨끗하게 본 책들은 알라딘과 예스 24를 통해서 수백 권을 헐값에 팔았다. 그 덕분에 비어진 공간에는 이제 더 많은 빛이 차오른다.


어찌 보면 나는 아버지를 통해 얻은 게 많다. 아버지가 했던 선택들과 행위들은 절대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얻은 것들 말이다. 아버지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그렇게 아버지를 통해 배운 셈이다. 하지만 그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연민이 인다. 그는 이미 자신의 불행을 다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고 나는 그가 자신의 어두운 창고를 벗어나서 좀 더 밝은 곳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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