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영 Good Spirit Nov 13. 2024

엄마의 재봉틀

 몇해 전, 어느 절 기념품 샾에서 딸들이 산 오르골 재봉틀. 놀랍게도 엄마가 쓰던 재봉틀과 같은 모양이었다. 엄마는 새색시 때부터 많은 시간을 재봉틀 앞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핸들을 움직이고 왼손은 재봉틀 바늘 아래 옷감을 밀어넣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드드드드드드, 실을 끼워놓은 바늘 끝이 천을 찔렀다 뺐다를 반복하면서 옷감을 촘촘하게 꿰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하여 종종 들여다보고는 했다. 엄마가 무언가 평온하게 몰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으므로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그 재봉틀로 옷이나 이불커버 등을 만들었다.

 특히, 딸들의 옷을 즐겨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처녀적 입었던 연분홍색 실크 원피스로 목 부분에 긴 리본을 묶을 수 있는 블라우스를 만들기도 했고 하늘색 코듀로이 직물로 동그란 주머니가 패치처럼 붙어있는 미니스커트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상상이 가겠지만 소심한 초등학생이 입기는 다소 화려했다. 하지만 꼭 화려한 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한동안은 아빠가 더 이상 입지 않는 질 좋은 양복바지가 아까워서 네 딸들에게 멜빵 치마 컬렉션을 만들어준 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게 가장 싫었다. 나는 입이 댓발은 나와서 툴툴거리기 일쑤였다. 엄마가 재봉틀로 만들어주는 것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인형옷뿐이었다. 사 입히는 인형옷과는 달리 완성도가 높고 천도 고급이었으니 명품인형복인 셈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내게 지어준 것은 밝은 것은 화려해서 싫고 어두운 것은 칙칙해서 싫었다. 나는 단지 엄마가 지어주는 내 옷이 싫었다.

 내 소원은 엄마가 아닌 공장에서 만들어주는 기성복을 입는 것이었다. 물론 공장에서도 누군가가 재봉틀을 돌려서 만든 것일 테지만 똑같은 옷이 수백 아니 수천 벌은 될 테니까 상관 없었다.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옷 말고 남들과 똑같은 그런 옷을 입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사람들 속에 파묻혀서 눈에 띄지 않기를 원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엄마는 내 옷 지어주기를 멈추셨다. 내가 유난스러운 사춘기 소녀였으니 뻔한 귀결이었다. 엄마는 자식들이 커가면서 점점 옷 지어주기를 멈추셨다. 그래도 여동생은 엄마표 옷을 좋아해서 꽤 오랫동안 엄마가 지어준 옷을 즐겨입었다. 엄마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재봉틀도 점점 낡아갔고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의 손길이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설 때는 재봉틀이 제 역할을 해냈다.  이를 테면, 내가 첫 쌍둥이 아들을 낳았을 때, 황토 염색을 한 여름용 아기 이불과 목화솜을 꽉 채운 푹신한 아기 이불 세트를 척척 만들어내는 일 말이다.

 엄마는 정말 바쁜 사람이었는데 왜 굳이 재봉틀로 늦은 시간까지 그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을까? 내겐 고단한 노동이나 공부처럼 보이는 일인데 말이다.

 훗날 엄마에게 듣게 되었다. 사실 엄마는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그래서 3개월짜리 홈패션 수업을 끊어서 배운지 한달 만에 강사의 스카우트 제안까지 받았지만 끝내 수료를 하지 못했다고. 무슨 여자가 기술을 배우냐며 큰아들이었던 외삼촌이 엄마를 방에 가두고 문 밖에 자물쇠를 걸어놓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고.

 엄마는 엄마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디자이너의 꿈을 가정이라는 그녀의 공간에서 실현했던 것이다. 어린 나는 알아주지 못했다. 엄마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하지만 이제는 잘 보인다. 엄마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자기의 방식으로 꼭 해내는. 그런 엄마가 고맙다.


재봉틀로 손수 지은 옷을 입은 엄마

작가의 이전글 시 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