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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영 GoodSpirit Dec 06. 2024

아버지 이야기

일상 一想

12월 3일에 발행한 '팔십 평생'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화장터에서 다 타고 남은 아버지의 뼛가루를 보았을 때, 제게 찾아온 말들이었지요.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맨 정신일 때보다 취할 때가 더 많았던 그는 취하지 않았을 때는 멍하니 소파에 길게 누워 TV를 보곤 했습니다. 가끔은, 아주 드물게 선한 눈매로 서글서글 웃으며 제 경계심을 해제시킬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취하면 어김없이 눈에 살기가 번뜩였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험한 말들을 내뱉고 난폭하게 살림을 부수기 일쑤였습니다.


"엄마아빠가 이혼하면 누구랑 살래?" 아버지는 자주 그렇게 묻고 했지요. 저는 엄마랑 살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그렇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 아버지는 그렇게 부서지고 망가진 사람이 되어 그 아내와 자식들을 부쉬고 망가뜨려야 했을까요?


 어린 시절,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젠 부끄럽지 않습니다. 나의 잘못이 아닌 일로 부끄러워하는 건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니까요. 


 만석꾼집 첫째 아들로 태어나 무척이나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으면 다른 사람도 귀하게 대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나는 아버지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이들이 누군지도 모른 채 그들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그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의지였으니까요. 아무도 강제한 적이 없었지.


 죽은 아버지에게 수의를 입힐 때,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손바닥으로 머리  옆을 붙드는 일을 제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채 차갑게 굳어버린 피부를 덮고 있는 흰 수의. 꼭 감긴 두 눈. 그 모습을 보는데 형언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 이렇게 나약하게 스러질 한 인간이 왜 그렇게 타인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면서 스스로 송장처럼 살았을까요? 아버지는 살아있을 때조차 모두의 마음에서 이미 죽어버린 송장이었으므로 아무도 진정 애도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누구에게라도 진정 사랑을 받은 적이 있을까요? 혹은 그 누구라도 진정 사랑해 본 적이 있을까요? 그가 한없이 처량하고 가엾니다.



사진: <제주 오름을 담다.>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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