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암묵적 신호
평소처럼 바쁜 출근길이었다. 앞차에 ‘초보운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깜빡이를 조심스럽게 켜며 내 차선으로 들어오려 했다. 나는 속도를 살짝 늦추고 여유를 내어줬다. 그러자 그 차는 안도의 숨을 내쉬듯 비상깜빡이를 오래 켜주었다.
그 순간, 비상깜빡이에 대해 문득 생각이 깊어졌다.
비상깜빡이는 단 하나의 신호다. 색이 바뀌지도 않고 모양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단지 깜빡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 안에는 상황에 따라 여러 마음이 담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위급한 순간이 있다.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내다 갑자기 정체 구간이 나오면 비상깜빡이를 켜 뒤차에 위험을 알린다. 백미러를 확인하고 뒤차도 깜빡이를 켠 것을 확인하면 괜히 뿌듯해진다. ‘내 할 일은 했다’는 작은 책임감도 느껴진다.
차선을 변경할 때, 누군가 양보해 주면 감사의 표시로 비상깜빡이를 켜준다. 나는 웬만하면 내 앞자리를 양보하는 편이다. 그러면 열에 여섯, 일곱 대는 감사 인사를 깜빡이로 전한다. 그 순간 마음이 괜히 따뜻해진다.
때로는 실수로 다른 운전자를 놀라게 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미안함을 담아 비상깜빡이를 길게 켠다. 반대로 누군가 나를 위협하고도 아무런 표시 없이 휙 지나가면 괜히 더 언짢아진다.
가끔 친구들과 각자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도로에서 헤어질 때면 비상깜빡이는 짧은 인사가 되기도 한다. 괜히 더 정겹고 기분 좋은 인사다.
비상깜빡이는 상황에 따라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위험, 감사, 사과, 작별 인사까지.
도로 위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가진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을 때 비상깜빡이 하나가 따듯하고 안전한 운전길을 만들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