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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지기 친구

가까우면서 어려운 친구

by 인생여행

말레이시아 어학원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친구가 이미 어학원을 알아놨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의 꼼꼼한 성격과 준비성을 알기에 많이 알아봤겠다 싶어 별다른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같이 가겠다고 결심하고 사전준비 없이 말레이시아로 오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숙소, 식당, 갈 곳 찾는 일에 정말 두 달 가까이를 투자한 반면, 말레이시아는 솔직히 말해 거의 찾아보질 않았을 정도로 친구의 정보력을 믿었다. 그 친구도 여기가 처음이었는데 말이다. 너무 현지인처럼 기댄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나 또한 도착한 후 시간적 여유가 있어 그 뒤로는 열심히 찾아봤지만 역시나 친구가 있으니 든든하였다.




대학동기인 내 친구는 정확히 본인의 의사표현을 하고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다.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눈치 보고 쉽게 얼버무리는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다. 그런 그 아이가 부럽고 때로는 내뱉는 말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나 스스로에 대해 단단하지 못했기에 남의 말에 많이 흔들렸던 듯하다. 나의 마음을 힘들게 했던 그 친구가 불편했다.

내가 스물인가 스물한 살쯤 아버지는 실직을 당하셨고 받은 퇴직금으로 아버지는 중개사 준비를, 오빠와 나는 대학 생활을 하던 때라 용돈을 아껴 써야 했고, 경제적인 면에서 항상 자유롭질 못했다. 몇 년 후 아버지가 공인 중개사를 따고 사무실을 차렸지만 중개에 성공을 한 적이 거의 없어 결국 대출을 갚기 위해 사무실과 집을 정리해 녹물이 나오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아끼면서 살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티를 내고 싶지 않았던 나의 20대였다. 그래도 취업하여 돈을 번 뒤로는 조금은 당당해질 수 있었던 듯하다. 그 뒤 대기업을 다니는 남편과 결혼하여 맞벌이를 해보니 경제적인 여유가 주는 든든함은 분명히 있더라. 당시에 나의 그런 상황을 꼭꼭 잘 감추며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감추면 감출수록 더 도드라졌으리라.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던 그 친구가 소소하게 사달라고 하는 것들이 당시 나에게는 부담이었고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는 소심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답답했다. 이제 졸업하고는 볼 일이 별로 없겠지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 뒤로 가장 많이 연락하게 되는 친구가 그 친구였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아침 8시 반쯤 아이들을 어학원에 보내면 점심까지 먹고 2~3시쯤 하원을 하기 때문에 그 시간은 자유 시간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보내고 브런치를 먹거나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차를 마시며 대학시절 에피소드들을 얘기하며 하하 호호 웃었다. 가장 반짝였던 나의 스무 살 그때가 좋았노라며.....

그러다 문득 용기 내어 얘기하고 싶어졌다. 그때는 난 네가 가장 불편했다고.. 친구는 적잖이 당황해했다. 전혀 몰랐다며.. 자긴 내가 제일 편했다고... 지금에 와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맞았나 싶다. 그런데 그냥 한 번쯤은 나의 마음은 그랬노라고 말해보고 싶었다.



그때 힘들었던 마음은 나 스스로 만든 벽으로 인한 것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거나 내 마음을 얘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건 아마도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마음이 커서인 듯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날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별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의 마음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본인의 마음을 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신기하다. 왜 나는 그렇게 살지를 못했을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으로 끙끙대며 곯았을까... 아직도 난 입 밖으로 내뱉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나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나 자신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 입으로 내뱉기 어렵다면 글로나마 조금은 내뱉어보고 싶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용기를 내어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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