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찾아와서 기획안 작성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 기획안은 저도 처음 보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예산은 얼마가 필요한지,
이 일을 통해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등등
꼼꼼하게 확인하고
알려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마치 전에 해본 것처럼
선배는 다 아는 것처럼
호기롭게 기획안을 대충 살피고
개념도 없는 말을 멋지게
포장해서 잔뜩 했습니다.
후배는 내가 선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진짜 진심인 건지
'역시 대단하다.'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후배가 떠나고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저는 그 기획안에 대해 몰랐습니다.
그리고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그놈의 능력 있는 선배라는 평판과
저의 자존심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꼼꼼하게 살펴보면 되는 일을
선배라는 이유로 대충 살펴보고 거만하게
행동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고
싶었을까요?
모든 것을 다 아는 척척박사 선배가
되고 싶었던 걸까요?
사실 선배라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도 아닌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왜 이렇게 두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연차가
쌓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모른다고 하면 왠지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 같았고
모자란 사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은 아는 척을 하는 것인데...
아는 척을 잘못하면
그때부터는 상황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제가 잘못된 말을 해도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분명 이 길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면서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후배의 기획안은 당연히 퇴짜를 맞았습니다.
제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이죠.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앞으로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 함께 답을 찾아갈 것입니다.
쉬운 길로 가서 적절한 도움을 줄 것입니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깐요.
위로스트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