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성현 Jan 01. 2025

종중 공동묘지

전라북도 임실(2)

종중 공동묘지 / 임실


작년 봄 도보여행할 때였다. 주로 야트막한 산 초입에 서 있는 생소한 석물을 자주 접했다. 석물에는 OO O氏 世葬山 또는 OO O氏 世阡이라고 새겨져 있다. 올해에도 남도에서 종종 보았다. 종중의 공동묘지 입구를 알리는 안내석이다. 오늘은 임실 강진면 도로변에서 咸陽朴氏世阡 안내석 앞을 지나왔다.


모든 성씨에는 본관이 있다. 본관은 다시 중시조로 갈리어 OO파로 나뉜다. 전 세계 어디든 본관과 파로 구분하는 나라는 한국 말고 없을 것이다. 성과 본관이 같은 동성동본은 오랜 세월 법적으로 결혼이 금지되어 많은 청춘 남녀가 비극적 삶을 살아야 했다. 이들의 결혼이 가능해진 것도 2005년부터다. 근친혼은 유전적인 문제가 야기된다고들 하지만 동성동본이라도 수십 촌 간은 남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은 수백 년 이상 내려온 본관 문화를 첨단을 달리는 현대까지 지속시켰다. 법이 개정되었지만, 8촌 이내는 금지다. 외국의 4촌 또는 3촌에 비해 무척 빡빡하다. 요즘에는 본관 없는 성씨 없고, 조상이 양반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다. 


본관을 따지다 보니 끼리끼리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는 각 분야에 배타적 폐쇄성을 낳았고, 인구감소와 연결되었다. 저출산은 선진국이 겪는 공통의 이슈다. 외국에서는 타국민과의 결혼과 출산에 관해 한국만큼 부정적이지 않아서 출산율 유지가 가능하다. 우리는 어떤가. 과거 화교들은 취업이 어려워 대거 한국을 떠났다. 그들은 주로 중국음식점을 경영하였고, 극히 일부는 약사 면허를 취득하여 약국을 개업하였다. 현재 다문화 가정이 늘었고 국가 지원이 증가했어도 국민의 심리적 포용은 아직 멀었다. 이것은 ‘단일민족’과 ‘혈통’이라는 허수에 집착하기 때문이고 씨족 본관 문화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미혼모 출산에 매우 부정적이어서 임신을 중도에 중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 또한 부계 사회의 본관 문화로 인해 미혼모 출산 아이를 부정적 시각으로 보기 때문 아닌가 싶다. 외국에서는 미혼모 출산아도 한 생명으로서 존중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미혼모 출산이 적정 인구 유지에 기여한다.    

 

오늘의 이모저모


들에서는 논을 갈아엎는 로터리 작업이 한창이다. 트랙터 엔진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로터리 작업을 마치면 물을 채우는 써레질이 기다린다. 다음은 모판에서 자란 어린 모를 이앙기가 꼭꼭 심겠지. 기계가 들어가지 못하는 귀퉁이에는 농부들이 손으로 심을 것이다. 여름 지나 가을이 되어 황금들녘이 되면 콤바인이 논에 들어가 수확을 하겠지. 논은 이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또다시 생명을 잉태하려 한다.


내가 걷기 싫어하는 4차선 도로를 오늘은 오후에 걸었다. 임실군에서 관촌면으로 가려면 이 길 하나뿐이라 도리가 없었다. 2차선과 4차선 도로의 단점만 모아 놓은 길이다. 2차선을 확장한 길이어서 곡선이 많고 갓길도 없다. 4차선이라서 대형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든다. 그때마다 나는 길가에 바짝 붙어 트럭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흙먼지가 휘몰아쳐 숨쉬기도 어려웠다.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아 끈을 조였다. 경치 구경, 사람 구경, 사색 등등은 저 멀리 물러갔다. 걷기만 하였더니 어느새 6km를 지나왔다.


시골 마을버스 정류장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려 마을 길로 걸어 들어가신다. 노부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분의 모습에서 맑은 하늘과 아담한 뒷산이 보인다. 허리가 굽은 두 분이 아름다워 보인다. 


오늘은 임실 관촌면에 있는 목욕탕 딸린 여관에 묵었다. 주인이 공짜로 목욕탕을 이용하란다.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몸이 풀린다. 도보여행 중 이런 호사를 다 누린다. 내일은 진안군을 지나간다.     


모래재를 넘으며
마을 어른신들이 버스 정류장까지 전동흴체어를 타고 와서 읍내에 볼일 보러 가신다
집은 폐가가 되었어도 밭에는 작물을 심는다
임실 관촌의 사선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