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지체를 혹사시키니 지체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번 여행에서 하루 도보거리를 25km 넘지 않으려 했다. 작년에 평균 30km 이상 걸었다가 다리에 문제가 생겨 도보여행을 중단하지 않았나. 올해에는 강원도 산간지대를 넘어야 하기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지만, 며칠 후 비가 온다고 하여 미리 30km로 늘렸다.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크게 잡혔다. 매일 숙소를 나서기 전과 휴식을 취할 때마다 발에 베이비파우더를 발랐지만 다가올 것이 왔다. 그러나 며칠만 고생하면 된다. 물집 부위는 딱딱하게 굳는다.
역사적으로 민중의 반란은 수없이 많았다. 밥이나 빵이 일부에만 집중될 때, 배고픈 다수는 들고일어났다. 프랑스대혁명도 표면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절대왕정을 지속시키려는 이념적 대결로 보이지만 저변에는 배고픈 민중들의 봉기가 발단이었다.
루이 16세 부인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을 일으킨 민중을 두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라도 먹지”라고 말했다는데, 이는 혁명파에서 퍼뜨린 거짓이지만 당시 극소수 상류층의 의식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백성들의 등을 따습게 하는 것 아닌가. 과거의 빈곤이 절대적 측면이라면 현대의 빈곤은 상대적이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양극화로 인해 부(富)는 한쪽으로 쏠리고,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실질적인 빈곤층도 확대되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2011년 일어난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도 부(富)의 상위 1% 집중에 민중들이 저항한 것이다. 함께 살아야 할 것이다. 내일부터는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별미 저녁밥>
오늘도 점심 식사는 혹시나 했는데 아니었다. 몇몇 식당이 있었지만, 닭백숙이나 꿩샤브샤브, 민물 매운탕 등 혼자 먹을 만한 메뉴가 아니어서 빵과 사과를 점심 식사로 대신에 하였다.
오늘 숙박할 청풍면에는 축제가 한창이다. 피로에 지친 묵직한 몸을 끌며 낮에 먹지 못한 보상심리로 식당을 두리번거리다가 피곤이 밀려와 먼저 숙소를 찾아다녔다. 주택을 개조한 작고 앙증맞은 민박집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대문을 들어서자 하얀 칠을 한 몽돌이 줄지어 박혀 있다. 진입로인 셈이다. 목제 의자는 빨간색 옷을 입었고,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기왓장이 의자에 앉아 있다. 온통 울긋불긋 원색의 향연이다. 이 집에서는 일상의 도구가 예술품이었다.
“혹시 국토종단 하시는 분이세요?”
소박한 모습의 민박집 여주인이 묻는다.
“네, 작년에 해남 땅끝마을에서 올라오다가 다리 부상으로 중단했다가 올해 상주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괜스레 말이 길다.
“어디 분이세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아, 얼마 전에는 부산 사는 여자 한 분이 손님처럼 해남에서 걸어 올라와서 우리 집에서 하루 묵어갔어요. 이 방이 그 여자분이 쓰던 방이에요.”
“네, 이 방이 국토종단용이군요.”
“여자 혼자 걸어가니까 차 타고 가던 남자들이 집적대더래요.”
아랫녘 지방도로에는 지나는 사람이나 자동차가 많지 않다. 남자인 나도 인적이 드문 길을 걸을 때 누가 해코지하러 나타나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을 대비하여 약간의 현금과 한 장의 신용카드만 지참하였다. 노상에서 무뢰배를 만나 돈을 빼앗기더라도 집에는 가야 하므로 배낭의 레인커버 안쪽에 비닐로 감싼 십만 원을 붙여 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기우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처럼 안전한 나라도 없는데 말이다.
숙소에 들어와 매번 똑같은 순서로 빨래하고, 목욕한 후 저녁 먹으러 나가는데 체격이 우람한 남자 주인이 밥 같이 먹지 않겠냐고 청한다. 음식을 만들어 동네 친한 사람들과 먹으려는데 같이 먹자고 하기에 얼씨구 좋다 받아들였다. 입에서 녹는 김치볶음밥이었다.
음식의 맛은 미뢰(味蕾)에서만 느끼는 게 아니다. 오감 이외에 마음의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 내외와 지인들은 나에게 국토종단 이모저모를 물었다. 이분들도 나에게 대단하다며 칭찬하였지만, 일상이 바쁜 그들 앞에서 얼마간 시간 낼 수 있는 나는 대단할 거 하나도 없다며 칭찬을 반려하였다.
김치볶음밥도 맛있지만 처음 보는 객에게 밥을 같이 먹자는 주인집 호의와 지인들과 주고받던 대화에 배가 더 불렀다. 주인 내외의 마음을 닮은 예쁜 마당과 실내 분위기에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