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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사는 그분 - 35화

정선(1)

by 조성현 Jan 24. 2025

정선 사는 그분 / 강원도 정선 (1)


10일 차(4월 15일)

평창 노론리~멧둔재터널~미탄면~비행기재터널~정선역 28km / 누적 241km   

  

어제 30km를 걸어서 그런가, 여기저기 쑤시고 밤새 몸이 오슬거렸다. 몸살이 오나 싶어 잠결에도 걱정이다. 아침에 걷기 시작하자 정상으로 돌아왔다.


북쪽으로 가려면 평창읍에서 대화면을 지나 진부에 가는 길이 빠르지만 나는 동쪽 정선을 거처 오대천을 따라 진부로 북상하기로 했다. 정선에 사는 선배 수필가를 찾아뵙기 위해서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기에 돌아서 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게 나 홀로 여행의 자유로움이다.    


 평창을 떠날 때쯤 정선에 사시는 선배 수필가 안영훈 선생과 전화통화를 하여 찾아뵙기로 하였다. 나보다 6년 연배인 선생은 부인과 함께 오래전 돌연 정선 산골짜기로 들어와 직접 나무로 집을 짓고 전기도 없이 4년을 살았다. 


건축사인 선생은 건축 설계회사 오너이기도 했지만 오십 초반에 모든 걸 내려놓고 산골로 들어갔다. 이유를 물었다. 한 달이면 보름간 집에 못 들어갈 정도로 바빠 집무실 한편에 간이침대를 둘 정도였단다. 돌연 이게 사람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승용차조차 접근이 안 되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골짜기에 들어왔다. 가진 것 내려놓으니 먹는 것도 소박해지고, 전기가 없으니까 눈과 귀가 밝아지더란다. 


“부와 명예 모두 버리기 어렵지요. 산골로 들어오지 않고 그대로 사셨으면 어떠하셨을까요?” 내가 질문했다.

“아마 괴물이 되었을 거예요”라고 선생은 답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사물로 보는 게 괴물 아닐까. 잉여 이익을 더 내려고 직원을 함부로 자르는 업주, 돈을 신으로 섬기며 돈에 거슬리면 가차 없이 사람을 해치는 기업과 오너들, 갑질을 일삼는 가진 자들…. 선생은 자신이 괴물이 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경사가 심한 집에서 10년을 살다 부인이 하는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단다. “10년을 당신 살고 싶은 곳에서 살았으니 이젠 내려가서 살자. 무릎이 아프다.” 선생은 곧바로 집을 내놓고, 아래로 내려가 다시 집을 지었다. 그런데 이 집 규모가 보통이 아니다. 살림집과 펜션, 오디오 시설을 갖춘 갤러리 겸 카페를 꾸몄다. 통나무로 지은 친환경 건축물이다. 물론 이 집도 선생의 작품이다. 


기타 연주와 노래 솜씨도 뛰어난 선생은 동네 주민을 위해 음악회를 열고, 인문학 강좌를 여는 등 지역사회에서 문화 활동을 하고 있다. 평소 소박하게 식사하시는 선생 내외께서 나를 위해 특식을 준비하셨다. 열흘 만에 제대로 된 집밥을 먹었다 

(내가 다녀가고 두 달이 지나 선생의 부인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접하고 정선으로 달려갔다. 선생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은 지금 정선 산골을 떠나 강릉에서 또 하나의 작품인 세 번째 집을 지어 살고 있다).


<걸어서 터널 통과하기>


오늘도 역시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강원도 입성하며 이틀째 톡톡히 신고식을 치른다. 오르막 3km를 지나자 1.2km 길이의 멧둔재터널을 만났다. 멧둔재는 평창읍 노론리와 미탄면 창리를 동서로 잇는 비포장 8km 도로다. 1991년 멧둔재터널이 완공되기 전에는 버스로 40분이 걸린 산길이었으나 이제는 평창군에서 ‘명품길’로 조성한 트레킹 코스다. 걷기 좋아하는 내가 이 길을 지나쳤다. 도보여행하며 걷기 좋은 산길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지나친 체력 소모는 금물이기에 접었다.


미탄면을 지나 또 다른 터널을 만났다. 길이 800m 비행기재터널이다. 평창 미탄면과 정선읍을 잇는 비행기재의 원래 명칭은 마전치(麻田峙)다. 인근에 마를 많이 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1950년대 중반, 노선버스가 운행하며 비행기재로 불렸다. 이유가 여러 가지이지만, 워낙 험준하고 도로 옆이 낭떠러지라서 마치 비행기에서 아래를 보는 것 같아서 붙여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서울에서 정선으로 가려면 42번 국도인 멧둔재터널과 비행기재터널을 지나야 한다. 


어느 곳이나 터널은 오르막으로 한참을 올라야 나타난다. 그때까진 땀을 많이 흘린다. 작년에 터널을 여러 개 지난 경험이 있어서 이젠 준비가 수월하다. 터널 진입 전, 바람막이 외투와 모자를 꽉 조이게 착용하고 황사용 마스크를 쓴다. 장갑을 끼고 가벼운 손전등도 꺼내 든다. 터널을 걷다 보면 어두운 곳이 있어서 필요하다. 


모든 터널 양쪽 가장자리에는 한 단 높은 배수로가 있고 시멘트 뚜껑이 덮여 있다. 그 위를 걸으면 안전하다. 다만 배수로 뚜껑 구멍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자동차로 터널을 지날 때는 소음이 그렇게 큰지 몰랐다. 터널 안 자동차 소음은 엄청나게 크다. 침착하게 걸어야 한다. 터널 안은 평지이므로 걷기는 수월하다. 바람도 불어 시원하다. 


평창에서 정선가는 길 절반 정도는 4차선 확장도로다. 아리랑고개라는 이름의 길이 있을 정도로 험한 고부랑 길에서 사고가 잦았다. 동강 래프팅 족들을 보며 오른 솔치재도 꽤 굽이쳤지만 걸을 만하다. 며칠 후 1,100M 운두령 넘을 예행연습을 제대로 한 셈이다. 평창과 정선은 산세가 다르다. 평창보다 정선의 산은 경사가 급하고 솟아 있다. 강원도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기분이 난다. 


내일도 정선 땅을 지나고 모레엔 진부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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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둔재 터널멧둔재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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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재 터널비행기재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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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치재 오르는 길솔치재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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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동강
저 아래 피암 터널저 아래 피암 터널
선배 수필가 거처였던 나무 집(펜션도 겸했다)선배 수필가 거처였던 나무 집(펜션도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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