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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살아요? - 33화

영월 주천

by 조성현

어디 살아요? / 영월 주천


8일 차(4월 13일)

충북 제천역~ 82번 지방도로~강원 영월 주천면 18km / 누적 183km


오늘은 그동안 피로가 누적되었고 비도 오기 때문에 18km 정도만 짧게 걸었다. 지인들이 하루 쉬어 가라고 충고했지만 걷기를 거를 수는 없다.


제천에서 하루 묵어가기는 난생처음이다. 제천이 충청북도이지만 사람들의 사투리가 충청도 억양과는 사뭇 다르다. 강원도 사투리다.


지역 구분이란 무엇일까. 한반도가 생성된 이래 태곳적부터 이 땅은 이 지형 그대로 존재했다. 청동기 문화가 시작하며 권력의 집중과 함께 권력자가 특정 지역을 통치한다. 각각의 권력 집단은 영토확장을 위한 끊임없이 대결을 하였고, 이를 통해 지역이 구분되었다. 그러다가 특정 세력이 한반도를 단일 통치하게 되자 효율성을 위해 지역을 구분하였다.


충청도니 강원도니 행정구역 구분은 엄밀히 말하면 큰 의미가 없다. 만약 오래전에 통치자가 제천을 강원도 관할지로 정했다면 도지사 선거에서 제천 사람들은 강원지사 선거에 참여했을 것이다.

서울인 한양의 원래 경계는 사대문 안이었다. 서대문구나 용산구, 동대문구도 경기도였다. 내가 사는 서울 동북부 노원구도 양주군 노원면이었으나 1963년에 서울로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의 구분보다 집값과 거주민들의 경제 상황과 기타 요건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에 구분이 생겨났다. 필자는 수필 「어디 살아요」에서 거주 지역에 따라 연애와 결혼이 갈리는 현상을 꼬집었다. 모 일간지 기사 내용이 필자를 자극했다.

강남 사는 남자를 선호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친구들 사이에 청담‧반포‧대치‧서초‧압구정 남자가 소개팅 들어오면 ‘꺅!’, 잠실‧용산‧분당‧목동 남자를 만나면 ‘오호~’, 그 밖의 지역은 ‘응?’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요. 대놓고 말은 못 해도 동네로 재산 수준은 가늠할 수 있잖아요?(노원구 아파트 거주 D. 27세, 여)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인 1960년대에 서울 강남 일대는 세인의 무관심 지역이었다. 이제는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특구가 되었다. 그 안에서도 아파트의 평수에 따라 스스로 구분 짓는다. 고가의 유명 상표 아파트 소유자들 중 일부는 임대아파트와 학군을 달리해달라는 민원을 넣었단다. 자식들에게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도록 단속한다. 다른 형태의 거주 아이들을 전거지(전세 사는 거지), 월거지(월세 사는 거지), 빌거지(빌라 사는 거지), 엘사(LH 아파트에 사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부른다는 기사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역 구분이 권력과 행정 위주에서 이제는 금권 중심으로 이동하였다. 젊은이들의 교제도 지역에 따라 나뉘는 천박한 천민자본주의가 나라를 덮었다. 내 자식들은 그 밖의 지역인 소위 ‘응?’ 지역에 살고 있었지만 서로 깊이 사랑하여 결혼하였다. 다행이다.


<주천 초입 공덕비>


오늘 종착지인 영월 주천면 초입에는 공덕비 십여 개가 무리 지어 서 있다. 찬찬히 살펴보았다. 공덕비는 지역민을 위해 공을 세운 관리를 기리고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워주는 것이라지만, 전국의 수많은 공덕비 중 몇 개가 해당될까. 탐관오리가 강제로 백성들에게 재물을 거둬들여 세운 것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동학혁명의 발원지인 전북 고부 탐관오리 조병갑의 공덕비이다.


오늘 본 것 중에서 세운 지 오래되지 않은, ‘이 고장 인물’이라는 표지석 뒤에 유달리 큰 네 개의 공덕비가 눈에 들어왔다. 주천면 출신 국회의원 네 명이 그 주인공이다. 네 사람의 면면을 들여다보았다. 자유당 시절 3‧15 부정선거에 연루되어 공민권이 박탈된 사람, 18년 장기독재 공화당 소속 두 명, 신군부가 장악한 민정당 출신이 한 사람 등 이 땅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직업인이 정치인인 현실에서, 그들의 공덕 내용도 적혀있지 않은 공덕비는 보는 이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차라리 기념비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무슨 옳은 일 했다고 기념비가 필요하지? 그러고 보니 오늘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주천으로 가는 길 이모저모>


영월군 금마리를 지나며 ‘금마리독립만세공원’ 표지석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자그마한 공원 안쪽으로 ‘금마리독립만세상(金磨里獨立萬歲像)’이 세워져 있다. 갓 쓴 양반 복장이 앞에 서고, 평민 복장의 남녀가 뒤에서 외치는 모양이다. 영월에서는 유일하게 이곳 금마리 주민 200여 명이 3.1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길가 대형 육우 농장을 지났다. 농장 출입구에는 출입금지 표지가 걸려 있고, 구조물이 출입을 막는다. 구수한 소똥 냄새도 나지 않는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우사가 텅 비어있고 여기저기 잡초가 돋아있다. 구제역으로 소들을 살처분한 것이다. 우사 옆 살림집에도 인기척은커녕 썰렁한 기운이 감돈다. 그들에게는 전 재산이었을 소를 잃었으니 사람을 탓하랴 하늘을 탓하랴.


내륙 깊숙이 산간지역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오늘도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제천시를 벗어나서 오늘의 종착지 주천까지 오는 동안 금마리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마을 하나 없이 500~800m에 달하는 여러 개 산을 끼고 걸었다. 평지를 걷는 것이 호사가 되었다. 앞으로는 계속 그럴 것이다. 산이 나타나면 넘으면 된다. 나도 길에 순응해 간다. 내일은 평창까지 30km 이상 걷는다. 강원 산간의 참맛을 봐야겠다.


오늘 출발지인 주천면의 한자를 보며 어제 숙소에서 막걸리 한잔했다. 술 ‘주(酒)’ 자에 샘 ‘천(泉)’ 자를 쓴다. 술이 솟아나는 샘이 있었다나? 지금도 그 샘터가 있다는데 찾을 수 없으니 사서 마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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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3_120138.jpg 시골 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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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3_123208.jpg 텅 빈 우사 - 농장주의 아픔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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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3_123937.jpg 길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다
20160413_130444.jpg 충청도와 작별하고 강원도 땅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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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3_141128.jpg 폐가는 어디서는 볼 수 있다


20160413_145021.jpg 영월 주천 초입에 줄지어 선 공덕비
20160413_145058.jpg 국회의원 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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