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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라는 건 어쩌면 부지런히 좋아하는 일

by 수원초이 Mar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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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멜로무비>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마음이 팍 상했던 대사가 있다. 주인공인 고겸은 잡지사의 기고 요청 전화에 기뻐하기는커녕 대수롭지 않게 대뜸 묻는다.

“얼만데요? 글자당.”

영화 촬영 현장을 기웃거리는 재능 없고 열정만 넘치는 연기 지망생인 줄만 알았던 주인공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보는 영화평론 블로거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별거 없는 것 같았던 주인공의 정체와 진정한 매력이 밝혀지는 그 장면에서 나는 질투심에 마음이 상해버리고 말았다. 극 중 그의 태도는 내 질투심을 더욱 부끄럽게 한다. 나라면 내 글을 어떤 잡지에 실어준다면 기뻐서 펄쩍 뛸 텐데. 원고료는 둘째치고 내 글을 누군가 읽어준다면 내 돈을 내서라도 그 기회를 살 텐데. 평소에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유형의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자기 재능에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사람. 모두가 환호하는데 정작 자신은 자기에 대해 무덤덤한 사람. 재능 있는 사람은 자기의 재능이 아깝지 않다. 나는 그런 인물에게 배가 아프다. 그러면서도 그런 사람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다. 심지어 드라마를 보다가도 그렇게 숨겨졌던 마음을 만난다.

요즘 나도 내가 낯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의문 투성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이런 것이다. 왜 전엔 그토록 잘하고 싶었던 것이 지금은 잘하고 싶지 않아 졌을까. 또는, 별로 전엔 관심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요즘은 왜 이리 나를 배 아프게 할까. 내가 그동안 그렇게 진심을 다했던 것이 지금은 왜 아무런 감흥이 없어졌을까. 전에 궁금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나 궁금할까. 내가 싫증 난 것은 어떤 대상일까, 아니면 그것을 둘러싼 삶의 방식일까. 반대로, 내가 끌리는 것은 어떤 새로운 대상 그 자체일까, 아니면 그것이 가져다주는 삶의 기회나 환경  같은 것일까. 그러면서 내 고민의 중심에 가보면 '재능'에 대한 의문이 있다. 어떤 일을 지속하고 싶은 것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이 질문을 만날 때 머뭇거리게 된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나를 기쁘게도 하고 반대로 낙담하게도 하지만 그것 자체가 객관적일 수는 없다. '넌 그거 잘할 것 같아'라는 말을 기다리면서도 나는 근본적으로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넌 정말 그 부분에선 특별해'라는 말은 잠시 나를 위로하긴 하지만 내가 붙잡고 생을 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말들 속엔 진짜 나에 대한 진실이 일부 담기기도 하지만 그 이의 소망이나 욕망, 어떤 자기 투사 같은 것이 담기기도 하니까. 드라마 속 인물을 보면서 그 사람을 질투하기도 하고 너무 아끼기도 하는 마음에도 사실 나는 그 인물보다는 그 사람을 애정하는 나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 드라마 결말에서 결국 고겸은 평론가라는 직업을 버리니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인생의 관찰자인 내가 동경했다고 해서 꼭 그것인 것은 아니다.

자기 삶의 진실은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자신의 몫이다. 때론 옆에 있는 아무나의 멱살을 잡고 나한테 답을 달라고 흔들어대고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올 때도 있다. 대체 난 뭘 해야 하는 것이냐고, 이제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냐고. 하지만 그것은 객기일 뿐일 것이다. 누가 뭘 하란다고 그걸 해내는 걸 제일 못하는 사람이 나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시간을 갖고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다.  3월이 중순을 지나니 어제는 준영이 나에게 물어왔다.

 "아직 방황 안 끝났어?"

그 질문에서 나는 그의 마음을 읽으려 해 본다. 내 방황에는 적정한 기한이 있는 것일까? 혹시 나에게 은근히 바라는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찌 됐든 그렇게 질문을 하기까지 기다리게 한 것엔 미안하지만 나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싶다. 스스로 납득이 되고 그래서 용기가 날 때까지.

그래서 내가 요즘 어떻게 하루를 보내느냐면, 아침에 어린이집 등원길에 나서면서 책이며 노트며를 챙긴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넣어 놓고 운동을 다녀오면 시간을 보낼 조용한 카페를 찾는다. 집으로 가면 일단 엉망이 된 집안꼴이 내 마음을 다 뺏어갈 것이므로. 집정리와 아이들 뒤치다꺼리도 중요하지만 그걸로 하루를 다 보내고 싶진 않다. 어딘가에 자리를 잡으면 내내 책을 읽는다. 생각나는 것들을 적기도 한다. 어떤 생각에는 잠깐 깊이 빠지면 괜히 눈물이 나기도 한다. 책을 읽기 위해, 또 책을 발견하기 위해 도서관이나 서점엘 다닌다. 보통은 한 책을 읽다 보면 읽어야 할 다음 책이 생겨난다. 그것은 주로 그때 빠져있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기도 하고, 좋아하게 된 작가가 좋아한다고 했던 다른 작가이기도 하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찾는 책을 빌려오기도 하고, 그냥 제목이나 서문에서 마음이 동하는 낯선 책을 같이 빌려오기도 한다.

그렇게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나는 마음속에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 나 혼자 친구 먹고, 스승 삼고, 상담을 받고, 내 맘에 그냥 히어로가 된 그런 작가들... 그리고 읽은 시간만큼이나 집중해서 글을 쓰려한다. 이 시간이 휴식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이, 나는 온 맘을 다해 읽고 생각하고 쓴다. 아이들을 만나면 왠지 지쳐있는 나를 본다. 아이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엄마에겐 좀 중요해, 이해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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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와 학교 앞은 내가 책을 펼치는 또 하나의 공간이다. 야외 책읽기는 감각을 열어주고 생각을 더 깊게 해준다. 날씨 좋은 날에 한해서이지만.

언젠가 이런 일상이 끝날지도 모르겠다. 작년처럼 해야 하는 일과 지켜야 하는 마감에 늘 쫄리고 불안한 시간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재능은 어쩌면 무언가를 끈질기게 좋아하는 것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내게 했던 말처럼, 좋아하는 것을 참 부지런하게 좋아하는 일은 내게 무엇보다 자신 있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가공의 이야기를 갈구하는 이유도 설명해 줍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에서보다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현상을 봅니다. 문학적 밀도를 지닌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다른 인물들과의 차별화와 개별화를 통해 자기 인식을 이뤄주는 하나의 수단이 됩니다. (...) 무엇보다도 서사적 텍스트를 쓰는 것은 자기 인식의 풍부한 원천이 됩니다.

페터 비에리(<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 <자기 결정(Wie wollen wir leben?)>, 58.


글을 쓸 때 우리는 스스로에 관해 생각하고 깊이 고뇌하기에 인간다운 존재로 거듭나는 거라고. 햄릿도, 로미오도, 베르테르도 고뇌했다. 사는 것은 늘 선택의 문제이고, 우리는 선택지를 품고서 문학 속의 그들처럼 주저하고 또한 후회한다.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차라리 인간다움이다. (…) 외부적으로 문제가 생기거나 내면에 균열과 갈등이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답을 묻는 대신 혼자 그것에 관해 쓰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겠다는 의지다. 그것이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손화신,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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