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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고 싶은 글들

by 수원초이 Mar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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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엔가 싸이월드가 다시 복구되었다가, 얼마 안 가 다시 닫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는 옛 추억들을 상기하고 싶어 다시 홈페이지에 접속해 미니홈피를 활성화해보기도 했다는데, 나는 그때도 그런 행동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 뒤 싸이월드가 아마 영구적으로 닫혔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어떤 과거, 특히 온라인상의 어떤 기록은 영구히 쓰레기통에 넣어야만 안심이 되는 면이 있다. 흑역사 같은 과거 얼굴 사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오히려, 너무 진심이어서 함부로 고백된 그 시절의 마음들, 열정들은 그냥 그 시절에만 가둬두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나간 세월에게 준 나의 뜨거운 마음을 현시대에 다시 끄집어내면 그 마음이 얼마나 멋쩍고 부끄러울 것이냔 말이다. 그것이 영원히 떠돈다는 것은 내가 지금도 SNS를 하기를 두려워하는 한 켠의 마음이다.


그 시절의 누군가에게 간직된 채로, 그 시절의 지나간 나에게만 한정된 채로, 어떤 마음들은 그냥 과거에 머물러야 한다. 싸이월드 폐쇄가 나에게 희소식이듯, 얼마 전 해킹 당해 미련 없이 삭제한 페이스북 계정이 그렇듯, 인스타그램도, 블로그도 어느 미래에는 영영 사라졌으면 좋겠다.


잊어버리고 영영 묻혀버려도 아쉽지 않은 숱한 글들이 있는 반면, 정작 다시 보고 싶은 글들은 누군가에게 보낸 글들이다. 부끄럽고 지나와서 다행이다 싶은 시절도 그 시간을 아쉬워지게 만드는 것은 그때 함께 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가 친구들이 나에게 적어준 편지들을 우연히 읽었다. SNS도 없고 카톡도 없던 시절, 우리는 편지를 참 많이 썼다. 카톡에 ‘ㅋㅋㅋ’를 잔뜩 실어 주고받은 가볍디 가벼운 대화들과는 다른, 묵직하고 꾹꾹 눌러 담은 문장들을 그때 우리는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썼다. 마치 손녀딸에게 편지를 적는 어른 마냥, 만리타국에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오래된 마음들을 풀고 다듬어서.


어떤 것들은 십 년, 이십 년도 된 그 편지들을 읽으니, 내 친구들은 모두 시인이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내가 열여덟 때, 내가 스물두 살 때, 이런 문장들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마음들을 담아 보냈나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편지들을 받고서 나는 또 어떤 소중한 마음을 써 보냈을까.


꿈에도 종종 등장하는 옛 친구들이 몇 있다. 그런 꿈을 꾼 날이면 아침부터 마음이 안 좋다. 그리워하고 있다고 연락도 못하는 그런 그리움이다. 내가 너무 중요해서 나만 들여다보느라 내게 얼마나 그 사람이 소중했는지 느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때 나눈 대화들과 우리가 너무 멀어져 있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반대로 이제 내가 그에게 어떤 감흥도 없을 정도로 바쁜 와중에 용건 없는 연락이 갑작스런 방문이 될까 머쓱한 마음 때문에.


그래서 오래 전 주고받은 문장들이 그리워진다. 그 글들 속에서는 조금도 바래지지 않았을 마음. 내가 다시 보고 싶은 글들은 그런 마음들이다. 그때로 다시 몇 번을 돌아간들 나 자신은 그 모습이 최선이었을 터지만 그 어설픈 나와 함께 해준 그 사람들의 그땐 미처 몰랐을 의미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진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를 더 오래 바라보고, 더 많은 글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들은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것이 될 것이다. 정작 내가 다시 보지는 못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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