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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도니뇨 Nov 12. 2024

출근길('23.02)

새벽출근 중의 생각들

 “이번 역은 둔촌동역. 둔촌동역입니다. 내리시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갑니다. 저도 그들 중 한 사람입니다.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나갑니다. 기계에 지갑을 갖다 대니 300원이 추가로 빠져나갑니다. 이 표시는 제가 얼마나 멀리서 왔는가를 대변해 줍니다. 지하에서 나가 지상을 걷습니다. ‘치직 치직 탁...!’ 여기저기서 작은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쓰읍... 후우...’ 새벽의 피로를 풀기 위함인지 출근길 결의를 다지기 위함인지 모를 한숨이 담배연기와 함께 뿜어져 나옵니다. 뒤로 날라오는 연기를 피하려 이리 걷고 저리 걸어보지만 여기저기서 무분별하게 날아오는 연기를 피할 도리는 없습니다. 최후의 발악으로 손을 휘저어 연기가 오지 못하게 막아봅니다. 길을 걸으며 담배를 태우는 분들에게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길가에 있는 옥외 전광판 시계가 지금은 오전 6시 45분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해가 아직 뜨지 않았습니다. 어제저녁 산책을 하며 본 달은 아직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어제 본 그 달을 보내지도 못한 채 몇 시간 뒤에 또 본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옵니다. 10분가량 걸으며 몇 번 손을 휘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사무실로 향합니다.

 별안간 천둥처럼 들리는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랍니다. 5분만 더 잘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너무 깊게 잠들어 지각이라도 할까 봐 형광등 스위치부터 누릅니다. 학창 시절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것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던 터라 곧잘 일어나지만 확실히 4시 50분의 기상은 쉽지 않습니다. ‘하.. 그래 돈 벌러 가야지!’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일어났지만 지각하지 않고 출근하겠다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도 맞습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사회생활의 기본은 시간 엄수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잠이 달아나게끔 움직입니다. 무겁디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리고 칫솔에 치약을 짭니다. 분주하게 준비를 마치고 나니 5시 30분입니다. 잠깐 앉아 출근 전 여유를 즐깁니다. 아침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고 시간도 여유롭지 않아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두유를 먹습니다. 호랑이 기운은 아니지만 제법 든든합니다. 5시 40분. 이제는 나가야 합니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쳤으면서 지하철역까지 뛰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새벽의 길가에는 청소하시는 미화원분도 계시고 아침 장사를 하시는 해장국집 할머니가 출근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24시간 운영하는 고깃집에도 사람이 몇 없습니다. 부지런히 걸어 지하철역으로 갑니다. 지하철에도 조조할인이 있습니다. 오전 6시 30분 이전에 개찰구를 통과하면 1250원이 아니라 1000원이 찍힙니다. 250원과 달콤한 잠을 맞바꾼 것 같은데 이 거래가 등가교환인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제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5호선 첫차를 한 달 넘게 타고 다니다 보니 그 시간에 항상 같은 칸에 타시는 분들이 눈에 익습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어디를 가시는지 모르지만 이른 시간에 같은 지하철을 탄다는 생각에 든든한 유대감이 생깁니다. 41분 동안 타는 지하철에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주섬주섬 책을 꺼내어 듭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만 독서를 해도 하루에 한 시간을 넘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소설을 읽어 내려갑니다. 10년 전 여름 나를 사로잡았던 책을 읽으며 독립군이 되었다가 만세를 외치는 군중이 되었다 하며 애국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상념에 잠기기도 좋은 시간입니다. 아직은 안정적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안정적인 순간이 찾아올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렇게 매일 아침에 공평하지 않은 거래를 하며 출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시원하게 들이킵니다. 너무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신이 없달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레 겁부터 먹습니다. 새삼 세상의 부모님들이 대단해지는 순간입니다.

 어른이 되면 고민 따위는 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미래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부모가 되면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귀여운 착각에서 벗어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끝없이 고민거리와 걱정거리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가 되어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 나 또한 성장하기에 그들을 감당할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틀라스 같을지언정 길러진 힘으로 그 무게를 버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러한 생각이 흘러가는 순간에도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이렇게 힘을 기른다면 조금씩 추가되는 삶의 무게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버티는 힘에서 또 근육이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혹시 조금 버거운 날에는 나뭇가지를 만지면 될 것 같습니다. ‘걱정을 걸어두는 나무.’ 어릴 적 읽었던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전 나무를 만지고 현관을 여는데 그전까지의 어두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활짝 웃는 한 집안의 가장만이 있더랍니다. 어찌 된 일인가 하니, 밖에서 생긴 걱정거리들을 집에 들어가기 전 현관 앞의 나무에 걸어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길에 걸어둔 걱정거리들을 다시 벗겨 일터로 가는데 늘 그 걱정거리는 전날보다 가벼워져 있다고 합니다. 가족에게 바깥에서의 고민거리와 삶의 무게를 전가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책임감과 지혜가 인상 깊었습니다. 아마 살아가며 꾸준하게 생기는 고민과 걱정들이 익숙해지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조금씩 길러지고 있으며 가끔은 그것들을 걸어둘 나뭇가지가 내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역은 둔촌동역. 둔촌동역입니다. 내리시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상념을 끝내라는 신호가 들립니다.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갑니다. 저도 그들 중 한 사람입니다. 지상으로 나와 걷습니다. ‘치직 치직 탁...!’ 여기저기서 작은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쓰읍... 후우...’ 걱정거리를 다시금 챙겨온 이들이 그들의 한숨을 담배연기에 숨겨 날려 보냅니다. 누군가의 한숨이 제 곁을 스쳐갑니다. 손을 휘젓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눈살이 찌푸려지지는 않습니다. 그들도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담배 한 대를 태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가에 있는 옥외 전광판 시계가 오전 6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직 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동쪽에서는 어렴풋이 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달이 응원합니다. 달이 차고 비워지는 것처럼 제게 주어지는 고민과 걱정거리는 분명 또 지나가고 해결될 것이라고. 해가 응원합니다. 새로운 고민과 걱정거리가 생겨나더라도 지금처럼 또 해가 뜰 것이니 힘내라고. 오늘은 퇴근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간 수고가 참 많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힘차게 사무실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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