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의 꿈.
지난번 글을 쓴 뒤로 긴 시간이 흘렀다. 차마 글을 쓰지 못할 만큼 바빴던 탓도 있지만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글을 쓰는 행위를 잠시 멈추고 싶었다. 다른 말로는 간증글을 쓰기 위해 기다리고 싶었다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잠깐 정리하자면 나는 갑자기 크게 힘들어진 회사생활과 인간관계를 뒤로하고 대전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 위한 준비를 했다. 대전에 있는 회사에 지원했고 남편도 대전에 있는 회사에 지원하게 했다. 대전에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대비해 서울에 있는 다른 회사에도 지원을 했지만 나는 대전에 내려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대전에 있는 집도 알아보고, 두 회사의 지원을 준비하고, 현재의 회사생활을 버티고, 중간고사 시험을 하나씩 해치우는 등 참 바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빠의 꿈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꿈을 맹신할 수는 없지만 생생하게 찾아온 꿈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만 같았다.
첫 번째 꿈은 내가 대전 회사의 첫 번째 면접을 보러 가는 날, 그리고 남편의 서류합격 소식을 들은 날 아빠에게 찾아왔다. 아빠의 집으로 수사슴, 암사슴, 새끼사슴, 무늬사슴 등 다양한 사슴들이 떼로 들어오는 꿈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꿈처럼 내 대전 서류 합격소식, 남편의 대전 서류, 시험 합격 소식이 연달아 찾아왔다.
두 번째 꿈은 아빠의 주머니에서 금덩어리가 다 빠져나가는 꿈이었다. 솔직히 대전에 내려가게 된다면 서울에 있는 집을 세를 내주고 대전에서 월세를 얻어 살아야 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봤을 때 대전행은 커다란 손실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대전행이 암시되는 것 같아 조금 설레기도 했고, 금전적인 문제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세 번째 꿈은 커다란 박스에 차곡차곡 쌓인 음식을 받는 꿈이었는데 그 음식 상자를 받을 때 아빠는 정말로 꼭 필요한 음식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도저히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믿을 수 없는 남편과 나의 순차적인 대전회사의 합격 소식들, 딱 맞는 집을 알아본 일, 대전에서 살게 된다면 시부모님께 육아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등 참 감사하게도 많은 딱 맞는 조건들이 하나씩 샘솟아 올랐다.
네 번째 꿈은 두 여학생이 수능을 9등과 91등의 점수로 합격하고 나서 나란히 어려운 시험 문제를 풀고 있는데 동시에 연필을 내려놓으며 문제를 푸는 꿈이었다고 하셨다. 1차 면접을 보고 온 오빠와, 2차 면접을 건너뛰고 대전회사에 최종 합격한 나. 이어지는 꿈들과 좋은 소식들이 남편과 내가 동시에 대전으로 내려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에 부풀게 했다.
그리고 서울에 지원한 회사의 서류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고 1차 면접을 기다리는 동안 아빠의 꿈이야기를 또 들을 수 있었다. 집 앞에 쭉 뻗는 시원한 고속도로가 뚫리는 꿈이었다고 하셨다. 이 꿈 이후 나는 서울에 있는 회사의 1차 면접에 합격했고 오빠는 1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요셉의 꿈이야기를 아는가? 12명의 형제들과 아버지를 상징하는 별과 달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꾼 요셉은 형들의 질투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된다. 그리고 종으로써 승승장구하다가 일하던 집 장군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고 죄수들이 갇히는 지하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게 된다. 고난을 극복하는 듯했던 요셉은 더 큰 고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다윗의 이야기를 아는가? 담대한 믿음으로 모두가 두려워한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은 사울왕의 질투로 12년 간 왕과 3천 명의 군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고난을 극복한 다윗은 더 큰 고난에 봉착하게 된다.
고난을 극복할 방법이라 생각했던 대전행 열차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전개로, 생생한 아빠의 꿈들과 함께 차근차근 진행되어 갔다. 나의 대전행은 기정사실화 되는 듯했다. 너무 생생하게 나의 가까운 미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담담했다. 지난주 월요일 남편의 불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대전 회사에 전화했다. 너무 죄송하지만 회사에 입사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쉬운 전화를 끝내자 감사한 마음이 몰려왔다. 여기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나와 남편은 엄청한 하나님의 은혜를 겪은 것이다.
그리고 대전행은 나의 길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요셉과 다윗은 두 번째 고난을 극복함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요셉은 자신을 통해 애굽에서 노예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악하게 쓰임 받은 자신의 형들을 용서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기는 시간을 통해 사울왕처럼 교만해 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한 왕이 되었다. 그리고 다윗왕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태어나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된다.
대전행이 물거품이 된 것을 감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믿음이 성장한 것을 깨닫게 됐다. 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 사이 아프리카 토고의 '라티프'라는 아이를 후원하게 됐다. 남을 도우며 살아갈 것에 대한 당위성을 가지게 되었다.
회사 일은 대전 행을 결정하기 전보다 더 많이 힘들어졌지만 그 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더 이상 감정적이지 않아졌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일하던 모습에서 바뀌어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빠르게 받아들이고 덤덤하게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서울에 지원한 회사에 붙게 될지, 현재 회사에 남을지 모르겠다. 이전처럼 추측하거나 기대하거나 상상하지 않게 된다. 그저 어떤 길이든 겸허히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너무 약하고 흔들리던 나는 한 달 새에 성장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달라지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미래가 너무 기대된다.
나는 더욱 더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