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시선
명절에 순천으로 내려갔다. 다 같이 게임도 하면서 실컷 놀다가 다른 친척분들께 짬을 내어 인사하고 오기로 했다. 원래는 나도 같이 가려했지만 걸리는 점이 있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사라진 걸 알자마자 난리가 날게 뻔한 사촌오빠만 둘이 남겨놔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촌오빠는 장애인이라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실제로 어린아이와 같이 행동한다. 어린아이는 졸리면 짜증을 부리는 데다, 엄마가 사라지면 울면서 엄마를 찾는다. 그래서 남겨진 할머니가 걱정이 돼서 나는 시골집에 남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빠는 3초마다 한 번씩 엄마가 어디 갔냐고 물었다. 잠잘 준비를 자신은 다 마쳤는데 엄마가 어디 갔냐고. 그래서 주의를 돌리고 빨리 잠들게 하기 위해서 같이 모기를 잡기도 하고, 100번 정도 엄마의 부재에 대해 설명해 주고, 할머니 안마를 같이 했다. 다행히 안마를 하러 바닥에 앉은 순간 졸렸는지 베개를 찾길래 얼른 불을 끄고 할머니와 셋이 잠들었다.
중간에 가족들이 다시 돌아와서 자리를 옮긴 뒤 다시 잠들었는데 아침에 엉엉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빨리 자기 집으로 가고 싶다며 오빠가 울고 있었다. 한 시간 내내 우는 소리를 듣다가 나도 겨우 깬 거라 비몽사몽 한 채로 사촌오빠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듣고 보니 고모는 그날 저녁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했다.
엉겁결에 나온 산책이어서 같이 시골길을 걷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산책을 하다간 금방 집으로 돌아가자고 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을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들꽃을, 들꽃의 색깔들을, 누런 논을, 빈 외양간을, 떨어진 밤송이를, 질척한 진흙바닥을, 저수지를, 집집들을 가리켰다.
최대한 많이 신기하고 다른 것들을 찾아야 관심을 돌릴 수 있어서 최대한 많이 산책길을 바라보고 살펴보았다.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사촌오빠는 노란색 커다란 꽃이 보이면 호박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 꽃이 보일 때마다 호박이라 외쳤고, 우리의 산책길에는 호박꽃이 20개쯤 보였다. 한 시간가량 노란색 호박꽃을 발견한 기쁨을 20번이나 누리게 되었다.
얼마 안 되는 작은 동네를 한 시간에 걸쳐 세 바퀴 돌았다. 냄새를 맡고 만져보고 바라보고 찾아보았다. 나는 그동안 이렇게 온 오감을 이용해 산책을 즐긴 적이 있었던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들을 질리지 않고 바라보며 기뻐한 적이 있었던가. 사촌오빠를 최대한 오래 산책을 시켜야 했기 때문에, 오빠가 즐거워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했고, 그렇게 나는 어린아이의 시선에 동화됐다.
그리고 나는 산책 이후 순간을 오래 바라보고 얻어지는 기쁨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길바닥에 떨어진 밤송이에서 밤 열댓 개를 주워 한없이 의기양양하게 집 대문을 열어젖혔을 때의 순간, 사촌오빠가 힘들었다며 하소연했던 귀여운 순간, 한 시간가량 주무시고 나온 고모의 고마운 눈빛, 할머니와 고모와 마루에 앉아 배를 깎아 먹었던 시간, 고모가 밭에서 따온 호박들을 크기 순으로 나열해 놓았던 모습 들.
잊고 있었던 감각을 되찾았다. 나는 끊임없이 어린아이의 미음으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