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나를 길들이고 있다는 느낌
최근에 나는 기를 쓰고 퇴사하려고 하고 있었다. 사생활 경계 없이 대하는 팀장님이 친하다는 이유로 나를 막대한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도망치는 것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사지원서를 써서 냈고, 이직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미 회사에서는 마음이 떴기 때문에 하루의 생활이 더 괴로워졌던 것 같다. 사람이 애정 어린 시선을 거두어들일 때, 대상은 더 처참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평소라면 한숨 한번 쉬고 넘길 일들이 지대한 짜증으로 다가왔고 신경은 더욱 예민하고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팀장님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 되어버려서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쩌면 회사생활이 힘들어서 몸이 이상증세를 보인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자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좀처럼 낫지 않는 눈의 결막염과, 주말 새에 염증으로 더 부풀어 오른 얼굴을 보며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나의 힘듦과 아픔은 혹시 내가 나의 가야 할 길을 이탈하려 했기 때문에 생겨난 부작용이 아닌지.
최근 들어 기도를 많이 했고 또 하지 않았다. 제발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고, 또 그 길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만 같은 직감에 기도를 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말씀 묵상을 하고 기도할 때에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형식상의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어차피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은 허락하지 않으실 것 아닌가요?’의 불손한 마음이었다. 그때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버르장머리 없다.
그렇다면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은 무엇이냐. 고통과 슬픔이 없는 길이다. 차라리 돈을 조금 덜 받을지언정 편안한 회사생활을 하며 남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연봉을 줄여 지원할 수 있는 비동종업계를 알아보았다. 내가 그동안 일구어낸 힘들고 소중한 경력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침 몸까지 아프게 되니 핑계가 좋았다. 유튜브에서도 퇴사시그널의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몸이 아픈 것이 아니었는가. 지원한 곳에서 떨어지게 되면 그냥 그대로 그만둬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러던 차에 묘한 깨달음이 피어올랐다. 나의 행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계획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나의 삶과 미래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운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운명을 피하게 되면 부작용이 존재하는구나. 운명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따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계획하심에 완전히 항복하겠다는 선언이구나.
나의 운명을 눈치채게 됐다.
(참고로 몸이 아프면서 화장도 제대로 못했고, 몸관리도 하지 못해 외적인 모습이 엉망이었다. 거울을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직도 외모의 강박이 심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일주일 넘게 화장도 하지 않은 채 퉁퉁 부은 얼굴로 밖을 나서면서, 체중계에 올라가는 날이 줄어들면서 점점 비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아등바등 붙잡고자 했던 것을 서서히 놓게 되는 것이. 이 또한 큰 계획 중 일부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온 세상이 나를 지금 길들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