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모양_망망대해 위의 선박
배는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지 않고,
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아는 힘으로 간다.
내가 어디에 처해있는지를 알아야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만
목적지 항구에 닿을 수가 있다.
내가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점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 있다.
나침반 바늘의 중심점은 나의 관념적인 위치이지,
나의 현실적인 위치가 아니다.
항해사는 자기 존재의 좌표와 진로의 방향이
선박의 엔진에 있지 않고,
선박의 뱃머리에 있지 않고,
방향키의 회전각도 속에 있지 않고,
오직 선박 밖에 존재하는
타자와의 거리와 각도와 그 관계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를 따라서
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 가면서
대양을 건너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항해는
더듬으면서 겨우 기어가는 꼴이다.
신호를 더듬으면서 기어가는 길은 확실한 길이다.
자전거여행 2, 김훈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요즘 글을 쓸 때 어떠한 글을 쓸지 고민이 된다. 한동안은 단독자의 마음으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나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글이란 무엇인가.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는 것은 단지 종이 위에 애꿎은 볼펜 똥을 남기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관념 상의 위치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위치를 알아야 한다. 나에게 위치를 가르쳐주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내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하는 것과, 바깥세상으로 꺼내진 글의 라이킷수와 조회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의 존재의 좌표와 진로의 방향이 나의 감수성과 흥미와 욕심에 있지 않고 오직 이 글을 읽게 될 독자와의 거리와 각도와 그 관계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순응해야 한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를 따라서 내 위치를 확인해 가면서 글을 써나가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를 따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먼저 독자가 원하는 글은 무엇일까? 도움이 되는 글이다. 독자의 마음에 위로, 감화, 자기 계발의 의지, 좌절감의 극복 등 그리고 더 나아가 재미와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요소들까지 다양한 종류의 얻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얻음은 알맹이가 될 수 있겠고 나는 알맹이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 그 알맹이는 단독자의 위치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호에 의해 알아갈 수 있다.
이전에는 알맹이가 너무나 모호했다. 이를테면 행복이란 알맹이를 나침반 바늘의 중심점으로 설정한 채 바다 위에 홀로 떠있는 글을 써나갔었다. 하지만 행복은 애초부터 사소한 것이고 우연한 것이다. 모호한 알맹이에 대해 멀리서 서술할 것이 아니라 보다 실체가 있는 알맹이에 대해 조금 더 가까운 위치에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해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오늘 먹은 핫초코에 대해 쓰는 것이 더 가까운 위치가 아닐까.
나와 등대의 상대적인 거리를 고려하면서 가까워져야 하고 이 등대가 아니라면 다른 등대와 가까워지면서 글을 써나가야 한다. 나는 지금 목적지 항구에 도달하기 위해 더듬더듬 하나의 등대에 가고 있는 중이다. 그 등대가 나의 길 위의 등대가 아니라면 다른 등대와 가까워져야 한다. 지금 나의 위치는 이러하다. 하지만 확실하다. 나는 더듬더듬 느리지만 목적지 항구에 당도할 것을 알고 있다. 고민이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