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용히 바라봐 주세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놀 수 없는 걸까?
우리도 처음에는 놀 권리가 있는 아이였는데.
[놀다] (동사)
1.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
2. 직업이나 일정히 하는 일 없이 지내다.
3. 어떤 일을 하다가 일정한 동안을 쉬다.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표준국어대사전]
논다는 건 우리에게는 조금은 먼 미래가 되어버린 걸까?
하지만 나는 아직 겨우 스물인데, 나는 이제 겨우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나는 그러한 현실에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놀다’라는 동사의 사전적 정의는 위에 설명한 바와 같다. 하지만 그걸 우리는 충분히 즐기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모두가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앞만 보며 나아간다.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느끼는 슬픔과 아픔은 외면한 채, 그렇게 목표를 향해 걸어 나아간다.
‘환경 속에 인간’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환경이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린 걸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남들이 짜 맞춘 편견과 기준에 드러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의 영혼에 칼을 겨누며, 놀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지금의 20대는 고단하다. 무엇이든 어렵고, 막막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기가 어렵고, 삶의 작은 즐거움일 수 있는 취미라는 것도 갖기 힘들어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20대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곁에 있는 우리의 부모님만 보아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자식을 위해 일하고 자식을 위해 돈을 벌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삶을 견뎌낸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행복한 가정을 유지해 나아가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기에 조금이나마 무언의 격려를 스스로에게 건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20대를 한 번 둘어봐주어라. 그리고 생각해보아 주길 바란다.
‘그들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할까?’
‘그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겨우 20년 동안 자신이 쌓은 무언가를 포기하기에 두려움을 느껴 정작 자신의 행복을 찾는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제 와서 무언가를 변화시키기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크나큰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으로 느끼고 있다. 자신이 살던 삶의 기준과는 조금은 다른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 자식들의 모습에 수많은 걱정과 두려움이 물 밀듯 밀려오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이런 말을 감히 20대를 조금이나마 대변하여 말한다.
우리는 잠시의 쉼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겨우 하루 이틀이 쌓여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모두가 입을 모아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 어렵사리 찾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렇게 해서 언제 돈을 모으고 언제 집을 사며 언제 가정을 꾸릴 것이냐는 말들을 듣고 지낸다. 감히 확신하지만 그다지 그들에게 좋은 말들은 아니다.
우리보다 조금 더 오래 인생을 지나왔고,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20대의 삶을 일반화시켜 평가하기에는 지금은 모두가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10년 전보다는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고 돈이 되지 않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조금은 나은 시선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긍정적인 시선으로 마음 깊이 그들을 응원해 주는 진정한 어른은 놀랍게도 몇 되지 않는다.
이 글을 발견하여, 끝까지 읽게 되었다면.
주변에 삶을 버티고 있는 젊은 이들에게 한 마디 건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