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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10대의 시절이 필요하다. 10대 시절의 경험들이 어린 성인이 되었을 때 많은 영향을 준다. 글쓴이는 기억도 나지 않을 어린 시절부터 꿈이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도 시키지도 않은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발 등에 불이 떨어진 듯 바삐 움직였다.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특성화 고등학교였다. 당시 학교의 분위기는 자격증을 하나도 취득하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낙오자인 듯 느끼게 하는 묘한 중압감이 있었다. 자격증 시험을 수도 없이 보기 위해 땡볕에 무거운 도구들을 이고 지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더위도, 추위도, 무거운 도구들도 나의 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간절했고, 무엇이라도 이루어 내려고 했다. 열정에 가득 차 매번 도전했고, 졸업과 동시에 나는 자격증 6개를 가진 20살이 되었다. (이게 그 학교 졸업생의 평균치였다. 즉, 나보다 더 많은 자격증을 가지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수두룩 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나의 10대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디딤돌을 만드는 것으로 가득 찼다.
마치 넓은 강을 건너기 위해 돌다리를 내 앞에 하나하나씩 놓으며 한 발씩 차근히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첫 발을 위한 돌 하나, 그다음 심혈을 기울인 돌 하나, 그렇게 단단한 돌을 놓을 때마다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올려놓아 길을 만들어간 돌다리가, 대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때, 멈추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강을 건너고 있다 자부했으나, 돌아보니 돌길은 사선으로 뻗어있었고 내 꿈은 장래희망이 되어 그저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되어있었다. 하여 나는 강가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또다시, 다른 나의 돌다리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쓰니가 생각하는 차이점은 이러하다.
꿈은 내가 살아가는 것의 목표이고, 장래희망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자본을 마련하기 위한 나의 장점을 살린 최선의 선택이다.
지금의 10대들은 ‘나는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지?’, ‘나는 어떤 것을 잘하는 거지?’를 알지 못한다. 그저 시대가, 환경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뿐이다. 그중에서도 운이 좋게도 공부에 재능을 발견하여, 화려한 성적을 만드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한 아이들이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 학과에 입학한다고 하여도, 그저 수많은 아이들의 일부일 뿐이다. 확실한 목적이 없는 공부를 이어나간 다수의 10대들은 자신이 선택한 대학 학과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의 10대들에게 필요한 시간은 경제활동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내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내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시선에서 경험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 나아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처럼 어린 어른이 아닌 어느 정도 삶의 경험치를 쌓은 어른들은 이리 말할지도 모른다.
‘그걸 모르겠으면, 일단 공부부터 해!’
‘그러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그 시절을 모두 보내면, 후회로 남을 거야. 그러니 공부해.’
감히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우리는 100세 시대가 아니라 120세, 아니 혹시 의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다면 200살까지도 살 수 있는 세대일 것이다. 지금의 10대는 그중 겨우 10분의 1도 채 살지 않은 것이다. 그 시절만이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피부로 와닿는 세대 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은 목표 없는 공부를 하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먼저 상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글쓴이는 꿈이라는 이름의 장래희망을 목표로 지금껏 노력해 왔다. 앞서 표현하였듯 시대의 흐름대로, 노력의 흐름대로 결정하고 따라다니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진취적으로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갔음에도 회의감을 느껴, 잠시 멈추어 되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교 추가학기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휴학을 결정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러한 사람도 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들이 생각하고 결정하고 스스로 진정한 꿈을 찾을 때까지 곁을 지키며 도움을 주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