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로딩 중... 05화

비와 친구들

각자가 가진 낭만의 단어

by 해차

요즘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진다. 글쓴이는 비를 떠올리면 습함, 끈적끈적함, 불쾌지수라는 부정적인 단어들만 연상될 만큼 비를 싫어한다. 이런 날씨가 계속되는 여름의 장마날에는 끊임없이 화가 끓어오르는 상태가 되어, 에어컨을 '파워냉방'으로 작동시켜 놓고 보송한 집 안에서 여름잠을 자곤 한다.


대학교 재학 시절 친구들과도 여러 번의 비를 맞이했다. 내 친구들은 비에 대한 각자의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나와 비슷하게 불쾌함이 먼저 떠오른다 하였고, 어떤 친구는 비 오는 날 연인에게서 이별을 통보받고 추적추적한 빗길을 걸었던 날이 떠올라 싫다고 했다. 그 많은 견해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낭만이라는 말이었다. 비가 오면 낭만 있지 않냐는 친구 G의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비가 어떻게 낭만이야..? 난 비가 너무너무 싫어. 너는 비가 왜 좋아?


G의 답은 이러했다.


첫째, 비 오는 날은 잠이 잘 와. 해가 쨍쨍한 날보다 햇빛이 구름에 가려져서 밝아야 하는 낮에도 흐릿한 해 덕분에 늦잠을 편하게 잘 수 있어.

두 번째, 비 오는 날 창 밖 소리를 듣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져. 너도 한 번 들어봐.

세 번째,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취침을 할 수 있지!


G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주위에 비가 오는 날에 낭만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친구가 처음은 아니었는데, 이유가 수면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예를 들 테면 비 오는 날에 거닐었던 바다가 인상 깊었다거나, 비 오는 날 창 밖을 바라보면 모든 것들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이유들이 대다수였다. 그게 내 친구들이 가진 비에 대한 진한 낭만을 향한 환상이자 추억들이었으니까.


아늑하고 낭만적인 취침을 좋아하는 G는 어두운 방 안에서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잠에 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수면욕이 아주 강한 친구였다. 평소에도 항상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고 성실히 살아가기 위해 늦은 밤에도 깨어있는 시간이 많았던 G에게 낮 시간에 취하는 수면에 대한 욕구는 날이 갈수록 커졌나 보다. 이 글을 보고 너라고 느껴진다면, 이젠 좀 밤에 자라. 비 오는 날 자는 것도 낮보단 밤이 좋더라. 너 맨날 챙겨 먹는 영양제들과 헬스보다 제시간에 자는 잠이 최고라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리 이제 몸 챙겨야지.


그에 반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차를 몰고 다니는 친구들은 '차에서 빗소리 듣는 건 좋지만 비랑 가까이하긴 싫어' 라든가. '비 오면 담배 피우러 나가기가 귀찮아. 너무 불편해!', '너 비 오는 날 출퇴근 버스나 지하철 타봤냐..? 그냥 내 바지를 포기해야 해. 바닥은 미끄럽지, 물 비린내는 진동하지, 사람들 땀냄새는 또 어떻고!'

사회에 간 내 친구들아 힘내라.. 나는 조금 더 백수를 즐기다가 너희가 말하는 사회의 비를 맞이할게...


얘들아, 각자에게 낭만을 찾을 수 있는 단어 하나씩은 품어보자.

나에게 비는 G가 했던 말 덕분에 조금은 낭만이 되었어.


너희도 오늘 결국엔 피할 수 없었던 비에 대해서 조금은 낭만을 담아 생각해 보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낭만 메이킹 아니겠냐. 그렇게 억지로라도 낭만 하나씩 찾아가며 보내자.

keyword
이전 04화지지대가 아니라, 미세한 구멍이 난 튜브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