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어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곳은 시골이다. 대한민국 끝자락에 위치한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마을에서는 담장 너머 옆집들과 인사하고 작고 많은 밭일들을 서로 품앗이하며 지낸다. 마을 어르신들께서는 서로 막걸리 한 잔, 이야기하며 소주 한 잔, 또 아침에는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며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 지내시는 시골 동네이다.
이런 곳에서 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작은 시골 학교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봉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이 나에게 에너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에서 학교와 학원을 반복적으로 드나드는 아이들에게 받는 에너지보다는 순수하고 밝은 에너지가 넘쳐나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온전히 나를 위한 이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어렸을 적 상상한 나의 어른의 모습과 현실을 비교하는 영상들이 많다. 예를 들어 그런 것이다.
상상한 어른 :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좋은 선물을 해드리고 나를 위한 선물도 사는 나
현실의 어른 : 월급이 들어온 날, 하겐다즈 사 먹기
사실 내 20대도 별 다를 것이 없어서 웃어넘기곤 한다.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하며~
나는 내가 10대였을 때, 내가 어른이 된 모습을 많이 상상하곤 했다. 행복한 학창 시절을 굳이 찾아 그날들의 기억을 끄집어보자면, 부유한 어른을 상상하곤 했던 것 같다. 경제적 독립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전문적으로 척척해내는 나의 모습, 그리고 행복한 모습으로 낭만 가득한 대학 캠퍼스를 누비는 나의 웃는 얼굴. 그런 표면적인 것들을 많이 상상했다.
즉, 내면의 20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내가 어떤 목표를 이루어 냈고,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생각해 보았지만 정작 나의 내면은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내면의 나를 찾는 과정이 10대의 삶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고, 그 과정을 거쳐 20대로, 같은 방식으로 30대와 40대씩 점점 알아가고 무뎌가며 나이 들어가는 것일까. 항상 앞으로의 삶에 관한 고민이 다양한 형태로 머릿속을 누빈다.
어느 날 12살 사촌 동생에게 물었다.
- 너는 크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 음.. 나는 주변에서 착한 이미지가 되어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고 나쁜 사람들이 있으면 참교육 해주고 싶어. 일진 같이 담배 피우는 학생들도 혼내주는 그런 사람. 아 그런데 내가 힘이 그만큼 세질 않네~ 아쉽다.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동생의 답에 나는 도입부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요리사 혹은 간호사 같은 직업을 이야기했었는데, 너는 내면의 어른을 이야기하는구나.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웠다. 이런 대답을 해낼 수 있는 네가 20대가 된다면 사회와 세상에 상처받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가득 담아 세상을 누볐으면 좋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난 늘 너에게 새로운 마음을 받아.
나는 아직 20대의 절반 밖에 살지 못했고, 앞으로 내가 마주해야 할 미래들은 더욱 어렵고 역설적 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그냥 궁금하니까.
두려우면 가끔은 멈춰가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모두가 알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이제라도 나를 찾는 연습을 해보길. 아 참, 일단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