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로딩 중... 04화

지지대가 아니라, 미세한 구멍이 난 튜브였을까.

부모와 자녀

by 해차

지지대가 되어 준다는 것, 하염없는 바다를 누비다 발견한 부표 같은 걸일까?

아이들이 자라면서 지지대도 함께 커지면 좋으련만,

왜 지지대는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추고 말없이 작아지는 걸까.

혹은 처음부터 지지대가 아닌 미세한 구멍이 나있는 커다란 튜브에 의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는 것이 두려웠다.

청소년이라는 보호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가장 두려웠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책임지고 모든 권리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


스무 살이 된 첫날에는 해방감에 친구들과 오색빛으로 찬란한 밤거리를 보며, 길에 있는 모든 '성인 대기자'들과 함께 큰 소리로 전광판에 크게 표시되어 있는 시간이 00시 1월 1일이 되길 기다리며 설렘에 가득 차있었다. 마침내 11시 59분 50초가 되었을 때, 그 커다란 광장 속 시계 앞에 모여있는 '성인 대기자'들과 함께 큰 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6, 5!, 4!!, 3!!!, 2!!!, 1!!!!! 와 아아아 아!!!!!!!!!!


길에 있던 모든 대기자들은 합법적 성인으로 인정받은 지 5초 만에 각각 흩어졌다. 편의점과 술집으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엉엉 우는 소녀들, 환호성을 지르며 벤치를 밟고 뛰어넘어 편의점으로 향하는 소년들,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는지 서로에게 함께 술을 마시겠냐 제안하는 길거리 헌팅까지. 다양한 따끈따끈한 성인들이 활기가 도는 밤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한 번쯤은 사보고 싶었던 담배를 사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걸어갔고,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한껏 들뜬 상태로 이마에 이제야 인정받게 된 신분증을 붙이고 위풍당당하게 편의점으로 향했다.


"말보로 레드 하나 주세요! 라이터도요!"


점원은 내 이마에 붙어 있는 주민등록증을 힐끗 보고는 지금까지 이런 애들 많았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어 보이며 담배와 라이터를 결제해 주었다. 그 당시에 함께 있던 친구들이 어른으로서의 첫 소비라고 설레발치며 찍었던 영상이 아직까지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저 그 행위가 합법적으로 내 손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리도 놀랍고 즐거웠었다.


친구들과 처음으로 즐기게 된 술자리에서 우리는 각자의 첫 주량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서로가 서로를 귀여워하며 즐거운 술자리를 보냈다. 그렇게 즐기고 다시 맞이한 밤거리는 모두가 취해있었고, 길거리에서 싸움도 나고 있었다. 모두가 그저 들뜬 마음에 그런 밤거리를 즐기고 있는 듯하였다.



스물이 지나고 스물 하나가 되었을 때, 대학교 내에서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모두가 스펙을 쌓는 것에 열중해 있고,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각자가 살아남기에 바빴다. 스무 살이 된 그 첫날의 열정이 누군가 찬 물을 끼얹은 듯 푹 가라앉아 옅은 연기만 내뿜고 있었다. 어른들이 말했던 대학교의 로망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살얼음판에 내동댕이쳐진 미숙한 어른들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나도 이에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고 교내외 활동을 열심히 하며 그렇게 4학년이 되어갔고, 흔히 말하는 번아웃을 겪었다.


'이렇게 살면,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거였나, 아니..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게 뭐였지?'


그리고 돌아가고 싶었다. 모든 보호를 받던 미성년자의 시절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아도 되었던 그 시절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찬물을 끼얹듯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쓰긴 했지만, 그래도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추가 학기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을 결정했다.


내가 찾던 지지대, 부표, 혹은 작은 구멍이 나있던 튜브. 그게 무엇이든 돌아가고 싶었다.


그게 집인가. 가족의 곁인가. 돌아가도 맞이해 줄까. 나에게 실망하진 않을까.


지금의 나를 감당할 수 있는 부모님일까. 오히려 잘 사는 줄 알았던 당신의 자녀가 아픈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당신들이 받게 될 고통이 얼마나 무겁고 깊을까.


그렇게 나는 조금은 작아진 나의 지지대로 돌아가는 것을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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