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칩의 배신

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06 | 감자칩이 비건이 아닌 건에 대하여

by 채루에 Ruhe

질소를 사면 감자칩을 준다는 한국에 비해 감자칩의 양이 꽤 인정 있는 편인 유럽에서 감자칩은 여러모로 유용한 간식거리다. 친구네 집에 가볍게 놀러 갈 때 음료와 함께, 피크닉이나 수영장을 갈 때도 꼭 누군가는 가져오는 게 바로 감자칩. 핀란드 교환학생 할 때에, 없는 형편이라 친구네 집에 갈 때면 Cider나 맥주, 그리고 감자칩을 사가곤 했다. 그때 감자칩에 종종 뿌리가 조금 아직 달려있기도 하여, 아 감자칩은 정말 감자를 튀긴 거가 맞구나 하고 신기해했었다.


KakaoTalk_20250213_152411821.jpg
KakaoTalk_20250213_161245026.jpg
감자칩 사진은 찍지 않았던 건 아무래도 민망해서였던 거 같다. 그래도 우리는 작년 여름 같이 자주 밖에서 누워 책을 읽었다.


프링글스처럼 밀가루가 들어간 감자칩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그냥 감자를 튀기고 시즈닝을 했다고 생각한 감자칩이라, 비나와 함께 여름 수영장에 갈 때 같이 먹으려고 소금후추맛 감자칩을 사서 갔다. 수영을 하고 나와 책을 읽으며 먹으려고 감자칩 사 왔어! 한 나에게 비나는 비건이야?라고 물었다.



응? 당연하지 감자칩이라니까?
감자칩도 비건이 아닐 때 있어. 비건 마크가 있는 게 보통 비건 감자칩이야.
아 시즈닝 때문인가? 이거 근데 그냥 소금이랑 후추 맛이야



그리고 알게 된 (내게는) 충격적이었던 사실. 뒤에 성분면을 잘 보면 우유에서 나온 Lactose(Sweet Wehy powder)를 대부분의 감자칩에서 넣고 있다는 것. 감자칩의 시즈닝이 감자칩에 잘 붙이기 위함인 거 같다고 하는 이 가루류의 첨가물은 우유에서 추출되어 비건일 수가 없다. 그래서 비나는 비건 마크가 붙어있는 감자칩을 사거나, 성분면을 잘 보고 산다는 거다. 나도 나름 꿀이나 사워크림 맛 같은 시즈닝 자체의 비건 문제를 신경 쓴다고 쓰고 사 왔는데 심지어 소금간만 될 때도 비건이 아닐 수 있다니 큰 배신감이 들었다.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 감자칩의 배신이었다. 비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 혼자 옆에서 감자칩을 먹으며 내 무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당혹스러움이 물론 감자칩은 맛있었다. 맛있기에 더 비건도 먹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했다.


KakaoTalk_20250213_151539215_06.jpg 잘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지만 나름 볼드표기로 기재해 두었다.

그래서 식품생명공학으로 대학원에 다니는 여동생에게 연락했다. 왜 이런 건 넣을까 하고. 동생도 추측에 가까운 내용으로 설명해 주긴 했지만 이게 그러니까 시즈닝이 감자칩에 더 잘 묻게 해주는 효과도 있고 고소한 맛이나 다른 맛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이유일 거라고 했다. 계속 궁금해 인터넷에 찾아보니,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건 왜 우유에서 나온 성분으로만 가능할까. 아마 아닐 거지만, 소비자들 중 비건이 적다 보니 단가를 올려가면서 성분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겠지 싶다.


감자칩뿐만 아니라 세상에 당연히 비건이리라 생각했던 많은 식음료들이 의외로 비건이 아닌 경우가 있다. 현대 기술은 비건에게 콩고기와 다양한 대체품을 주었지만, 그만큼 비건 마크가 없는 옵션들에게 조심해야 하는 환경도 함께 준 듯하다.



다음번 비나를 집에 초대했을 땐, 마트에서 좀 더 감자칩들을 들여다봤다. 생각보다 비건 마크가 들어간 감자칩은 적었고 대부분 베지테리언 마크만 있었다. 선택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좁았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비건의 삶은 조금 더 복잡했고, 그의 친구들에게도 제약적인 선택지가 던져진 기분이다. 그냥 모른 척 비건 친구가 선택한 삶이니 최소한의 소극적 배려를 하는 것과, 무엇이든 제안할 때 적극적으로 비건 옵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사실 비나는 그 무엇도 요구한 적 없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대단한 삶의 행태를 지지하는 형태로나마 나의 응원을 표하고 싶었던 건 오로지 내 마음이다.



Foto von Jeff Siepman auf Unsplash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 by 채루에 Ruhe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6화크리스마스 포틀럭, 근데 이제 비건을 곁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