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08 | 맛있는 건 늘 짜릿하니까
우리의 식욕은 카페나 베이커리에 그치지 않고, 당연하게 -모든 내 친구들이 그러하듯- 맛집을 같이 찾아다니는 데에도 이어졌다. 코로나 전의 프랑크푸르트는 새로운 식당이나 카페, 바가 잘 생기지 않는 곳이었는데, 몇 년 전인가부터 새로운 카페와 식당이 자주 들어서고 있다. 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일 뿐일 수도 있다. 내가 조금 더 프랑크푸르트를 잘 알게 되어 그런 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무튼, 그래서 우리는 친해진 이후로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이 서로 알고 있던, 혹은 새로 알게 된 식당과 카페들을 같이 다니고 있다. 맛있는 것에 대한 우리의 탐구열은 비슷한 편이라, 새로운 곳에 가서 음식을 먹어보며 뭐가 더 맛있는지 이야기하고, 마치 골목식당에라도 나온 듯 가성비를 논하고 사진을 잔뜩 찍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첫 한 두 번의 시도 후, 나는 식당을 제안할 때, 비건 옵션을 먼저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그러하듯이 독일도 비건 식단에 대한 인식이 많은 식당들에 보편적으로 깔려있어, 비건/일반 베지테리언이 잘 표기가 되어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비건 혹은 채식 식당이 아니더라도 대개 적어도 하나의 채식 메뉴를 가지고 있다. 다만 비건 메뉴는 종종 없기도 할뿐더러, 메뉴가 딱 1개인지라 모르고 갔다가는 원치 않는 메뉴를 강제로 먹어야 하는 서로 불편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비건 식당은 아니지만 비건 메뉴가 옵션이 비교적 많은 식당들을 선호했는데, 비나랑 나는 그걸 "Vegan-friendly"라고 지칭하곤 한다. 한국말로 하면 "비건 친화적인"정도가 되겠다.
우리가 비건 친화적이라고 보는 식당에는 보통 비건 메뉴가 적어도 3개는 있는 것 같다. 비나에게 물어보진 않았으니 적어도 나는 그렇다. 전식도 자주 시켜 먹는 유럽 식문화 특성상, 적어도 전식에 한 개, 본식에 두세 개는 있어야 골라 먹을 수 있는 거 같다. 뿐만 아니라, 모든 식당이 음식 메뉴에 비건 마크를 해주진 않는다. 그럼 우리끼리 재료를 살펴보고도, 적혀있지 않은 재료 중에 비건이 있을 수 있으니 물어보고 시키게 된다. 그러니 그런 비건 마크가 친절하게 되어있는 메뉴는 사실 편할 수밖에 없다.
메뉴마다 비건친화가 잘 되는 케이스도 있는데, 가장 쉬운 건 아무래도 재료가 잘 보이는 피자나 타코 같은 메뉴들이라고 한다 - 이 글을 쓰면서 그 이유가 더 이해가 갔다. 위에 말한 적혀있는 재료 외에 들어갔을 재료들이 거의 없는 메뉴들인 데다가, 재료를 다양하게 먹는 게 특징이니, 비건 버전 몇 개 추가하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인 거 같다. 날이 아직 추운 요즘은 잘 가지 않지만 여름에 우린 자주 피자리아를 갔다. 피자를 픽업해서 야외에서 먹기도 하고, 회사 점심시간에 후다닥 나가서 맛있다는 피자리아까지 급히 다녀와 먹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 지난여름 내 식단은 거진 나폴리 그 자체였다. (우리는 나폴리탄 피자를 좋아하는 편이다.)
피자만큼 타코도 재료들이 독립적으로 들어가는 편이고, 비건으로 만들기 간단해 비건이 많은 편인데 지난번 우리 운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예약해서 간 타코가 메인인 멕시칸 식당에 하필 비건 타코는 없고 다른 메뉴들로만 비건이 가능했다. 비나는 괜찮다며, 타코가 아닌 메뉴를 시켰지만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러니까, 비건 친화가 잘 되는 메뉴라고 해도 보장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비건 음식만 파는 식당은 생각보다 많았는데, 최근에는 SUNBAP이라는 비건 한식당이 확장해서 열었다. 비건 떡볶이, 비건 만두 등을 파는데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던 비나는 바로 먹어보곤 비건 맛집으로 컨펌했다. 비건 식당의 장점은 가게 자체가 비건에 대한 이해가 깊고, 모든 재료를 비건으로 신경 써서 선정했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비건 식당을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비건 식당의 경우 대체제를 많이 쓰는 편인데, 나는 본래 재료가 비건인 재료들은 좋아하지만, 비건 치즈나 유제품 같은 재료는 그닥 즐기지 못해서, 대체제를 안 쓰는 비건 메뉴를 찾아 먹으려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일반 식당에서 비나가 겪는 불편함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외에도 Ong Tao라는 베트남 식당도 시내에 비건 버전 분점을 냈는데 꽤 맛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구시가지 근처에 잠깐 비건 이탈리안 비스트로가 있어 갔었다. 비나를 만나기 전에 다른 채식주의자 친구와 다녀왔던 것인데, 땅콩 분태로 만든 비건 파마산 치즈가 인상적이었고, 또 맛도 있었다. 비건 글을 적으며 되짚어 보니, 비건 카페보다 비건 식당이 오히려 적은 것도 같다. 아니면 자주 가지 않아 모를 뿐일까. 구글로 찾아보니 전부 비건만 파는 식당은 그렇게 많지 않긴 한 것 같다. 아무래도 수요가 적으니 그럴까, 아니면 타깃을 비건만으로 잡는다는 게 식당에게는 부담스러운 과제인 걸까.
유럽에 있는 아시안 식당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아시안 식당과 진짜 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당. 물론 요즘은 Authentic(진정한, 진짜의)한 음식을 찾곤 해서 둘 다 해당되는 경우도 잦아졌지만, 여전히 한국인들 사이에 소문난 한식당과 독일인 친구들이 가보고 싶다는 한식당은 다른 경우가 많다. 그건 중식이나 다른 아시안 식당에서도 비슷한 듯하다.
사실 아시아 음식은 채소 위주의 메뉴가 많은 편이라 비건이 쉽다고 생각했다. 근데 생각 외의 복병은 소스였다. 채소를 볶거나 샐러드를 만든 소스들에 피쉬소스 같은 액젓류나 굴소스, X.O소스처럼 해산물 베이스로 된 소스가 자꾸 들어가는 거다. 재료와 달리 소스에 대한 설명은 맛으로만 표현되지 비건 여부를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비건 마크가 있지 않고서야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문제는 나는 주로 진짜 아시아 사람들이 가는 식당을 자주 가고, 비나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은 데, 그런 식당들에서는 잦은 빈도로 비건에 대한 이해도가 비교적 낮고, 메뉴에 비건 마크를 잘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서 물어봐도 "비건? 응 이거 베지테리안이야!"같은 불안한 긍정의 답변을 듣곤 한다. 소스들이 어떤 게 비건인지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걱정이 있어, 자주 가자고는 못한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비나가 소외감을 느끼거나 충분한 이해받음을 느끼지 못할까 걱정해서 미리 많이 찾아보곤 했다. 그렇지만 지금쯤에 느낀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비나는 7년간 비건으로 다수인 논비건 사이에서 살아왔고,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다. 어렴풋이 느끼는 거지만 중요한 건 존중하고 지지하는 마음인 것 같다. 자주 보다 보니, 어떤 식당들은 가기 전에 미리 확인해 보면 좋을지, 어떤 메뉴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도 비건 메뉴가 있을지 알게 된다. 나이가 들고 삶이 평평해질수록 먹는 것이 중요해진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가고, 해 먹고 나누는 재미는 시간이 지나도 신기하게도 끝이 없다. 그리고 그걸 곁들일 좋은 수다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비나는 내게 너무 즐거운 대화상대이고, 그래서 비나와 함께 계속해서 맛집을 찾아다니기 위해 좀 더 비건 친화적인 식당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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