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까지는 못 되지만

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09 | 간헐적 채식인 되어보기

by 채루에 Ruhe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중에 <The game changer>라는 작품이 있다. 다큐멘터리를 영 좋아하진 않는 내게 친구 삔새가 추천해 주었다.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지 않을 테니 한번 보고 소감을 알려달라고 했다. 다큐를 자주 보지 않는 나지만 괜히 궁금해져 본 <The game changer>는 채식이 사실 사람을 더 건강하고 강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다른 방면에 전문가들이 분석한, 왜 채식이 더 몸에 건강한지 , 그리고 어떻게 더 건강한지에 대한 내용을 다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어떤 음식이 더 건강하냐는 주제에 대해서는 어떤 주기에 따라 유행하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100% 신뢰가 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고 있듯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였는 데다가 서른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꺾여 버린 나의 건강 그래프가 맞물려 삼 개월간 간헐적 채식을 해 보기로 했다.


딱 3개월만, 간헐적 채식


그러니까 일주일에 이틀만 제외하고 채식을 삼 개월간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비건까지는 감히 마음도 먹지 못했다. 내 입맛과 딱히 맞지는 않는 음식들로 가득한 독일에서 한국보다 흔한 것들 중 내 입에 가장 잘 맞는 것이 유제품이었기 때문에 이건 간헐적으로도 마음먹기 어려웠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주위에 소문을 낸 것이다. "나 일주일에 이틀 빼고는 채식을 해보려고." 그러고선 여기저기 소문도 냈다. 그래서 보는 눈이 많다 보니 치팅도 할 수 없이 3개월이 흘러갔다. 첫 한 달은 좀 어려웠다. 솔직히 고기 없이 저녁 메뉴를 뭘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특히 손님을 초대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손님들을 불러놓고 야채만 가득한 밥상을 내어놓는 게 한국인 정서 상 그런 것인지 민망했다. 그러나 웬걸, 찾아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메뉴들이 인터넷에 가득했다. 특히 영어로 검색하면 채식주의자나 비건을 위한 손님접대용 요리들이, 아니면 틱톡이나 인스타에서 바이럴 된 채식 레시피들이 가득했다. 몰라서 못했지 알고 나니 간단하고 좋았다.


고기가 당기지 않는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간헐적 채식은 정리하였지만 신기한 변화가 있다. 이제 매일 카운팅 하며 이번 주에 고기를 아직 먹을 수 있는가 챙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매주 마트에서 닭고기를 한 두 번은 사던 내가 한 달에 고기를 한 번 살까 말까 하다. 물론 식당에 가선 양껏 고기를 먹곤 하지만, 집에서 요리할 때 고기가 늘 메인 베이스였던 내게 고기가 자주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은 신기한 변화다. 왜 설탕도 끊어내고 나면 오히려 생각이 안 난다, 뇌가 설탕에 중독되었던 것이다,라는 류의 말이 있지 않은가. 그와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그래서 고기를 덜 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야채의 세계는 끝이 없어

뇨끼랑 곁들여 먹은 방울양배추구이. 살짝 탄 듯 구워야 쓴 맛이 없어 제 맛이라는 걸 배우기까지 좀 걸렸다.

다른 변화는 새로이 알게 된 야채들이다. 야채 중심의 식사를 해보고 있다고 소문을 내고 나서, (특히 언니들이) 자기가 새로 알게 된, 혹은 너무 좋아하는 야채요리들을 이야기해 줬다. 한국에서는 요리를 많이 하지 않기도 했지만, 우선 한국과 독일의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야채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 오이만 하더라도 독일 오이는 훨씬 크고 무르다. 무나 고구마도 한국에서 보는 종들은 아시아마트에서나 찾아볼 수 있고, 비슷한 듯 다른 야채들이 많다. 또, 아예 한국에서는 흔히 쓰지 않던 Rosenkohl(방울양배추) / Blumenkohl(컬리플라워)도 있다. 지난 한 두 달간, Kohl(배추류)이란 Kohl은 다 오븐에 때려 넣고 구워 먹은 것 같다. 물론 오븐에 서 나와 그라나파다노와 페퍼론치노를 잔뜩 뿌려 먹고 있지만, 세상에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세상에 그라나파다노와 페퍼론치노 뿌린 배추 안 먹은 사람 없게 해 주세요! 를 외치고 싶은 정도다. 배추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그 맛에 빠진 건 채식 때문일 수도, 어른이 되어가는 나이 덕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인생은 길고 새로운 맛을 즐기게 된 건 또 재미있는 일이다.


건강해진 걸까


사실 건강해졌냐는 질문에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나의 경우 다른 변수를 통제한 실험이 아니기도 하고, 뭐 피부가 좀 더 좋아지긴 했지만 그즈음에 환경이 바뀐 것도 많아 그걸로 인해 건강이 좋아졌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단 고기가 덜 당긴다는 점에서부터 무언가 좋은 신호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변경한 엄마는 건강이 확연히 좋아졌다. 당뇨 위험군이던 혈당수치가 급격히 떨어져서 안정권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니, 현재 건강상태에 따라 채식이 좋을 수도 있다는 말은 맞는 것도 같다.



채식도 어려운 데...


친구들과 모여서 먹을 때면 따로 시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선호해야만 했다. 초대를 받은 날은 고기를 먹는 날로 대부분 잡아야 한다.

개인의 의지로 혼자서만 식사를 한다면 요즘 세상에 채식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무료로 찾아 쓸 수 있는 레시피도 많은 데다가, 대체 재료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집에서 해 먹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다만 밖에서 친구들과 만나는 게 은근히 귀찮고 까다로운 부분들이 생긴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랑 모여서 저녁을 먹는데 주최자 친구가 바비큐나 보쌈 같은 고기 위주의 식사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 아니면 같이 가자는 식당이 다 같이 나눠 먹어야 하는 고기 위주의 식당인데 우린 세 명 정도라, 내가 혼자 야채요리를 먹으면 애매해질 때처럼, 자잘한 이유들로 나로 인해 모임에 불편함이 야기된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그럴 때가 나는 사실 3개월 중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비로소 비나가 진짜 얼마나 어렵고 불편하고 지내고 있을지 이해가 갔다. 채식보다 더 까다로운 게 비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블로그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아마 이런 어려움이 내게 신선했고, 그래서 더 기록으로 이런 내용들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도 같다.

간헐적으로나마 채식을 하고 보니 식당 메뉴들에 생각보다 채식 메뉴는 꽤 있지만 비건이 없다는 점, 친구들과 나눠먹을 땐 소수가 된다는 점이 보였다.


내가 채식을 할 동안 비나는 이런저런 팁들을 공유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가장 신기하고도 고마웠던 부분은, 그러고 나서 간헐적 채식을 관둔 나를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설득하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저 그 자체로 존중하되, 마찬가지로 채식을 한다고 하면 좀 더 기뻐해주고, 환영해 주는 그런 정도였다. 마치 교회에 너무 나오라고 하면 거부감이 드는 것과 같은 장르로, 그런 비나의 반쯤 무심한 태도에 괜스레 더 긍정적인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조금 실패해도 부담이 없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서 편했던 것일 수도 있다.




간단히 고기를 매일 먹지 않은 3개월이었지만 내 인생 가장 긴 채식의 기간이기도 했다. 7년을 동물성 음식을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아 온 비나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심지어 건강을 가장 큰 목적으로 잡은 나와 달리 비나는 환경과 동물들을 위한 이유가 가장 크다는 점에서 친구지만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게 절대적으로 완전할 수는 없겠지만, 나도 이제 고기를 좀 더 적게 섭취하고, 동물의 삶을 좀 더 존중해 키워 준 BIO / Haltungsform 1의 제품들을 소비하며 살아보려 노력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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