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10 | 맛있는 건 같이 먹자
새 집에 들어오고 내가 가장 자주 하는 것은 걸스나잇을 호스팅 하는 것.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렇고, 사실 그냥 여자들끼리 모여 놀 수 있게 초대를 한다는 거다. 그렇지만 매번 모여서 밥 먹고 수다만 떨면 조금 지루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우리는 늘 그렇듯 핑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되는 대로 매번 그럴듯한 주제를 찾아 새로운 테마의 걸스 나잇을 꾸리고 있는 중이다.
해를 거의 볼 수 없는 우울한 독일에 겨울이 시작되었고, 독일에서 그걸 견디는 방법은 마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듯하다. 9월부터 슈퍼마켓에서 크리스마스 관련 된 물건들을 찾아볼 수 있고 11 월이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나도 그래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진저브레드 하우스를 꾸며 보기로 했다. 사실 소셜 미디어에서 당시 유행했던 걸 따라한 건 데, 같은 마음이었는지 친구들도 실컷 신나서 놀러 왔다.
핑계는 진저 브레드 하우스를 만드는 거지만 한국인의 초대에 밥이 빠지면 그렇게 서운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빨리 먹고 치운 다음, 진저브레드 하우스를 만들 수 있도록 간단한 파스타를 준비했다. Instagram과 틱톡에 유행에서, 심지어 온라인 레시피에 "TikTok 파스타"라는 별명이 붙은 페타 치즈를 활용한 파스타인데, 곤 언니가 해줬던 걸 잊지 못해 나도 종종 친구들이 오면 하곤 한다. 이 날은 특히 이 맛있는 파스타가 페타 치즈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먹지 못하는 비나가 우리랑 같은 맛을 느끼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서 연구 끝에 비건 페타 치즈가 아닌 두부를 이용한 크림소스를 만들어서 내어 놓았다.
논비건 레시피는 간단하게 페타치즈에 마늘을 잔뜩 꽂고 방울토마토와 올리브오일을 잔뜩 뿌려 오븐에 마늘과 치즈가 노릇해질 때까지 구운 다음, 꺼내어 으깨고 거기에 시금치나 파슬리 같은 초록잎을 곁들여 짧은 파스타에 비벼 먹는 거다. 상상하는 그 맛처럼, 정말 맛있다. 다행히 채식 요리다 보니, 재료 중에 대체가 필요한 건 페타 치즈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먹어본 비건 페타치즈는 영 인위적인 향이 내 스타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으깨질 때 같은 질감일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찾은 건 두부크림소스. 두부와 볶은 견과류를 갈아서 만든 두부 크림소스로 으깬 페타치즈를 대체했다.
결과물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다른 친구들도 비건 버전을 자꾸만 먹을 정도로 고소한 맛이 오히려 좋았다고 한다. 독일에서 사는 두부가 조금만 더 쌌더라면 나도 종종 해먹을 만도 하다. (그렇지만 두부가 너무 비싸다.)
온 유럽인들이 가족 없는 사람 왕따 시키는 연례행사인 크리스마스에도 비나와 다른 회사 동료 친구와 함께 모여, 어찌 됐든 명절인 라는 구색에 맞춰 만두를 빚기로 했다. 독일에 크리스마스 연휴는 신기해서 24 일은 문을 열지만 25일 26 일은 슈퍼마켓을 포함한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그래서 친구들은 26일에 오지만 24일에 미리 장을 보러 갔다. 품명 그전에 미리 봐 두었던 비건 고기 코너의 다짐육이 있었는데 연이어 문을 닫아 재고를 많이 주문해 두지 않은 건지 하필이면 재고가 떨어진 날이었던 건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비건 다짐육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겨우 냉동코너에서 가격이 꽤 되는 비건 다짐육을 찾아 일반 다진 고기와 함께 사 왔다.
친구들이 오는 당일 아침부터 바쁘게 만두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피는 한인 마트에서 미리 냉동으로 사 두었다가 간단히 해동만 했다. 나는 뭐든 맥시멀리스트라 고기만두와 김치 만두를 둘 다 하고 싶었다 근데 그걸 또 비건과 논비건으로 나누니 총 4가지 종류의 속이 나왔다. 그러기 위해 고기뿐만 아니라 김치도 비건과 논 비건 김치로 사야 했다. 그렇다, 일반 김치는 비건이 아니다. 김치에 들어가는 액젓이 주원인인데 다행히도 종갓집과 비비고에서 간편하게 비건 김치를 판다. 특히 유럽에서는 아시아 마트에서 비건 김치를 찾아보기가 쉽다.
재료를 다 준비할 때쯤 비나와 다른 한국인 친구 쥬진이 도착했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진짜 명절 느낌이 나게도 티비를 틀어 두고 쓰잘데 없는 대화들을 나누며 만두를 피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님이 카자흐스탄계인 비나도 만두와 비슷한 전통 음식이 있어 생각보다 잘 빚었다, 원리는 비슷하니까. 그리하여 어쩌다 보니 내가 제일 못생기게 만두를 빚는 사람이었다. 만두를 빚자고 불러놓고 제일 못생긴 만두를 빚고 있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또 한참을 웃어젖혔다.
내가 기억하는 명절의 풍경은 만두를 빚고 있는 와중에 이미 첫 번째 배치의 만두가 쪄서 나와서 호호 불어가면서 먹었다가 또 빚다가 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나도 얼른 만두를 쪄서 내왔다. 비나 용의 비건만두를 바로 뺐어먹진 못했지만 다음 판에 쥬진과 나도 뺐어먹었다. 비나에 따르면 내가 산 비건 고기가 가장 비싼 브랜드라더니, 저렴한 일반 고기보다 맛있는 게 아닌가. 바베큐 향을 약간 베여놔서 오히려 불향이 나는 엄청난 만두가 나와버렸다. 그러니까 비건 재료도 비쌀수록 맛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비건 요리를 하면 다 같이 먹을 수 있지만 굳이 두 가지 버전을 만드는 이유는 다른 친구들은 또 비건 음식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이 모두 배불리 나갔으면 좋겠다는 건 큰 손이자 큰 집 며느리인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비교해 보면서 비건 버전이 생각보다 맛있다는 걸 나를 포함해서 다 같이 알게 되는 것도 또 즐거운 포인트이다. 그러니 이 쉽고 간단한 비건 버전들을 다들 써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자세한 레시피를 따로 올리진 않지만, 계량이 특별히 필요 없어 정말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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