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포틀럭, 근데 이제 비건을 곁들인

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05 | 다양성이 애정 어린 존중을 받을 때

by 채루에 Ruhe

독일의 회사들은 대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파티를 연다. 일종의 송년회인 셈인데, 연말이 되면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의 일정을 고려해 보통 12월 초에서 이른 중순 중에 잡힌다. 다만 우리 회사는 코로나 이후로 크리스마스파티가 없었고, 작년부터 우리 팀은 자체적으로 하루 날을 잡아 포틀럭 런치를 하고 있다. (포틀럭은 할로윈 홈파티 때 설명한 것처럼 유럽에서 꽤 자주 있는 식사모임의 형태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인 비나는 우리 팀의 팀 이벤트 주관을 자진해서 도맡아서 하고 있는데, 포틀럭 런치 날짜를 정하고 참석 인원까지 확인하고 나서 오랜만에 회사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한다고 공지메일이 왔다. 그렇지만 다들 이미 신나 있던지라, 포틀럭 런치는 그대로 팀 내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사랑과 애정의 팀 크리스마스 포틀럭
Team Christmas Potluck


우리 팀은 대부분이 20대에서 30대 초반으로 또래들이 모여있다. 아무래도 광고회사이다 보니 연령대가 낮은 것도 있지만 유독 우리 팀은 나이가 비슷비슷한 멤버들로 모여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아무래도 다들 외국인이라 친구나 가족이 독일에 적어서 그런지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걸 즐거워한다. 13명이나 있는 팀의 분위기가 좋다는 건 사실 무척 감사한 일임을 알고 있다. 우리끼리 우리 회사의 유일한 복지가 서로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곤 할 정도다. 그래서 회사가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하지 않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우리끼리라도 포틀럭을 하자고 이야기가 나온 데서 이 포틀럭 런치가 시작된 것도 있다.


인터네셔널한 우리 팀


나이가 고만고만한 데에 비해, 국적과 문화적 배경은 굉장히 다양하다. 우리 팀은 총 13명인데, 그중에 국적만 8개가 존재한다. 그중에 몇 명은 심지어 이중국적이거나 다문화 배경을 가졌다. 덕분에 점심시간이나 브레이크 타임이면 우리는 자주 서로의 문화를 비교한다. 예를 들어, 결혼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이에 대한 부모님의 관심이 문화권 별로 어떻게 보이는지, 얼마나 부모님이 관여할 수 있는지, 아니면 현재 자기네 나라에서는 어떤 추세가 있는지 등, 마치 예전 한국의 여러 외국인들이 모여하던 토크쇼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각자 자기 고향의 음식들을 최대한 해왔다. 신기한 음식들도 먹어볼 수 있었고, 어떤 음식들을 그 나라에서 크리스마스에 먹는 지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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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애정과 정성이 묻어난 작년, 아니 재작년의 크리스마스 런치


배려와 애정이 묻어난 더블 옵션


올해도 크리스마스 런치 당일을 이 주 정도 앞두고 멤버 한 명이 엑셀파일을 돌려, 각자 준비할 음식을 공유했다. 포틀럭은 자칫하면 모두가 디저트만 준비해 온다거나 하는 대참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략적으로라도 어떤 종류의 음식을 가져올 계획인지 미리 이야기해 두는 게 중요하다. 전식인지, 메인 디쉬를 가져올 건지, 아니면 디저트나 음료를 준비할 건지도 서로 조율이 필요한 데, 사실 First come, First served(먼저 온 사람이 장땡, 그런 식의 표현이다)라고, 내가 파일을 열었을 땐 이미 디저트가 많아 나는 눈치껏 메인 메뉴 겸 에피타이저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Screenshot 2025-02-06 093157.png 작년엔 그냥 밋밋한 엑셀파일이었는데 올해는 귀엽게도 아이콘도 넣어줬다. 팀 이벤트에 진심인 게 나 혼자가 아니라 즐겁다.


보면 알겠지만, 많은 멤버들이 비건과 논비건을 동시에 준비해 오겠다고 적었는데, 이게 너무 귀엽고도 애정이 넘치는 거다. 왜냐하면 우리 팀에 비건은 비나 하나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채식주의도 없기 때문에, 사실 1명의 포션만 비건음식이 있어도 된다. 그렇게 되면 물론 비나가 식사는 하겠지만, 골라 먹는 옵션이 있는 우리와 다르게 딱 그 음식만 먹어야 할 거다. 그래서 이건 오로지 다들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포틀럭에 비건인 비나도 동일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마음이 담긴 거다. 누가 나서서 "우리 모두 비건 옵션도 하나씩 해오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부분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음식, 자신 있는 음식, 아니면 멤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자기 나라나 가족의 음식을 준비해 온 것 같다. 나도 인스타에서 본 레시피의 치즈감자전과 비건 옵션으로 유부초밥을 하기로 했다. 원래 포틀럭은 1인분만 해 가도 나눠먹을 수 있다는 컨셉이지만, 엄마를 닮아 손이 큰 나는 물론, 대부분의 멤버들이 보통 모두가 맛을 볼 수 있게 13인의 작은 포션을 마련해 간다. 그래서 내 메뉴 선정엔 사실 많은 양을 준비하기가 간단하고, 회사에서 데우기 쉽거나 차갑게 먹어도 맛있는 메뉴가 무엇인지가 먼저 고려되었다.


각자의 비건음식 도전기


내가 비건 친구 백서를 쓰기 시작한 것처럼, 다른 멤버들에게도 비건은 모두 친근하지만은 않다. 물론 한국인인 나에 비해 비건에 대한 상식이나 친근함은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비건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 봤던 게 아니기에 대부분의 멤버들에게 막상 메뉴를 준비하니 약간의 도전이었다고 했다.


메인디쉬와 전채요리들


사실 비건 옵션이 조금 적었던 건 메인디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인 비나가 혼자 먹기엔 많을 정도의 양이었다. 내가 준비한 치즈가 안 들어간 감자채전, 유부초밥 소말리아계 영국인 동료가 준비해 온 바지오(Bajiyo), 브라질-포르투갈인 동료의 비건 피자, 마지막으로 독일인 동료의 홈메이드 사워도우빵이 비건이었다. 그렇다, 유부초밥, 감자전은 아주 간단히 비건이다. 혹시라도 나처럼 치즈를 추가한다면 바로 논비건이 되겠지만, 만약 원한다면 그 조차도 비건 치즈를 쓸 수 있다. 한국에 비해 유럽에서는 비건 치즈를 마트 일반 치즈 코너 아니면 비건 코너에서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두부를 튀긴 유부의 경우 비건들이 좋아하는 메뉴인 거 같다. 특히 맵지도 않고 해서 외국인 친구들이 쉽게 즐길 수 있다.


아쉽게도 치즈나 계란이 들어가 비나가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반 채식주의자들도 먹을 수 있는 채식 메뉴도 많았다. 치즈가 들어간 라따뚜이, 치즈와 계란이 들어간 불가리안 동료의 바니챠(Banitsa)와 마요네즈가 들어간 올리비어(Olivier)샐러드가 있었다. 너무 다 맛있었어서 비나가 먹어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지만 이미 있는 메뉴로도 비나는 배부르다고 했고, 적극적인 팀원들의 비건에 대한 존중과 지원에 이미 마음이 벅찬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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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기까지 집에서 가져온 멤버도 있었다. 뜨거운 물을 밑에 받힌 판에 부어 따뜻하게 다시 김을 올리는 방법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여 마음이 따뜻했다.



베이킹 마스터들의 비건 베이킹


독일에서는 자기 생일이 되면 케이크류의 빵을 구워 사무실로 가져오는 문화가 있다. 스킵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 팀은 사이가 좋은 만큼 출근하는 날 생일이라면 가져오는 게 대부분인데, 덕분에 우리 팀에 베이킹 마스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본인 생일날 피스타치오 비건 케이크를 구워왔던 D는 우리의 열렬한 요청에 응해 인기의 피스타치오 케이크를 구워왔고, 더불어 식사와 곁들일 사워도우빵도 구워와 줬다.(나는 두바이 케이크냐고 장난쳤다가 두바이 초콜렛은 우리의 영원한 조크가 되어간다.) 그의 베이킹 스킬은 정말어서 D의 생일이 다시 오길 기다리게 한다. 비건 케이크가 맛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모두 먹이고 싶은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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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내 가장 인기좋은 베이커 멤버가 구워온 피스타치오 비건 케익은 아쉽게도 사진 찍을 때 열어두지 않아 사진이 잘 나온 게 없다. 다만 본인 생일 때 똑같은 케익을 구워왔던 사진.

사진은 찍어두지 못했지만 티라미수를 준비한 멤버 이진은 작은 디저트글라스에 1인분 두부 티라미수를 만들어 왔다. 두부를 갈아서 만들 때 두부 향을 날리려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설탕이 들어가야 했다고 말하며 비건이 꼭 건강하지도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건 맞다. 비건 음식이 무조건 건강하진 않은 게 설탕이나 화학물질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니 논비건과 똑같이 영양소나 당을 잘 고려해서 식사를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미국인인 팀장님은 마찬가지로 비건이라고 믿을 수 없는 호박파이를 해왔다. 식사를 너무 많이 먹은 모든 멤버들이 너무 아쉬워할 정도로 모든 비건, 논비건 디저트들이 가릴 거 없이 맛있었다. 지난번엔 비건 바나나 케이크를 만들다 습관적으로 계란을 넣었어서 우리에게 놀림을 한참 받았던 A는 이번엔 결국 비건 바나나케이크를 만들지 못하고 논 비건 초콜릿 케이크를 구워왔다고 했다. 비건 베이킹은 나도 아직 저 높은 수준의 경지로만 느껴져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어쨌든, 비나가 다 먹어보지도 못할 만큼의 비건 옵션들이 있었기에, 전혀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비건이냐 아니냐 와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레벨로 포틀럭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다들 비건 옵션도 준비를 한다는 새로운 챌린지가 있었던 게 오히려 즐거움의 포인트였던 거 같다.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니 즐겁게 준비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긴 하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 미리 준비해 온 시크릿 산타까지 하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했다. 올해는 두 번째이다 보고 서로를 더 잘 알다 보니 더 재밌고 웃긴 선물 증정식을 마치고 다시 아쉽게 자리로 돌아가 오후 근무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남은 디저트들을 카페테리아에 올려두고 다른 팀들도 먹을 수 있게 했더니, 다들 우리 팀 자리로 와서 한 바가지 수다를 떨고는 돌아가, 종일 연말 분위기가 가득했다.




비건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다양성이라고 생각된다. 다양성을 가장 존중하는 곳이 바로 유럽이 아닐까 나는 종종 생각하는데, 이런 존중이 그저 존중을 넘어서 애정이 어릴 때, 모두가 즐겁다는 참 이상적인 모습을 본 날이었다. 물론 멤버들이 착한 것도 있지만, 비나에 대한 애정이 녹아들어 다들 정말 '모두'가 즐길 수 있게 준비를 했던 게 아닐까. 조금 귀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선 귀찮을 수 있는 일도 신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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