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을 위한 K-선물 고르기

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4: 한국에서 살만한 비건 선물

by 채루에 Ruhe

Cozy & Cat Nest 프로젝트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지금의 집으로 이사오며 나를 응원해 주고 도와준 많은 친구들 중 하나가 비나다. 가장 가까운 곳에 살며, 아프다고 하면 뭐라도 당장 들고 와주려고 했고, 자주 들여다봐주었다. 언제든 급한 도움이 필요하면 걱정 말고 연락하란 말을 잊지 못한다. 따뜻한 비나에게 한국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하라고 했지만 나도 선물을 사다 주고 싶었다.


아직은 어색한 K-Vegan


한국은 사실 채식주의자나 비건 친구들이 여행하기엔 불편함이 아직 많은 곳이다. 꽤 많은 음식점이 몇 종류의 메인 음식을 위주로 하는 곳인 데다 비건 옵션을 항상 준비해 두는 서양과 달리 아직은 비건이 흔하지 않아 그런 옵션이 없다. 그렇다 보니 사전에 확인된 비건 식당 위주로 가야 할 테고, 비건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한국여행을 하기엔 불편한 점이 꽤나 많을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한식에는 본래 비건인 음식이 꽤 많다. 사찰음식의 꽤 대다수가 비건이기도 하고, 유제품이 잘 쓰이지 않는 재료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비건 음식을 떠올릴 수 있다. 대부분의 계란이나 액젓이 들어가지 않은 나물류, 산채 비빔밥, 대부분의 죽이나 떡, 묵요리 등 갈래를 잘 잡으면 끊이지 않고 생각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식당에서 파는 메인메뉴는 아무래도 고기나 해산물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튼 그만큼 본래의 한국전통적인 선물이나 물건에선 비건 선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요즘 내 친구들이 원하는 건 나무 부채나, 자개 거울 같은 예전 인사동에서 사가던 그런 전통적인 선물이 아니다. 핫한 K뷰티, K-pop, K-food 등 근래 뜨는 K-Culture(사실 한국문화라는 뜻인데, 연상되는 것들은 전혀 다르다.)적인 물건들이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K-선물


비건이라고 해서 비나의 삶이 비건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전혀 아니다. 비나와 내가 쉽고 빠르게 가까워진 데에는 도보 거리의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도 있지만, 비나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한몫했다고 본다. 그런 비나 같은 친구에게, 비건과 논 비건을 제쳐두고 좋아할 만한 선물을 먼저 생각해 본다.


1. 화장품: 기초화장, 선크림, 마스크팩 같은 선물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좋은 선물인 거 같다. 가격대도 저렴한 마스크 팩에서 꽤 나가는 드럭스토어의 화장품까지, 여러 옵션이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2. 귀걸이, 목도리, 파우치 등 귀여운 액세서리: 종종 회사나 사적으로 모인 자리에서 귀걸이 칭찬을 받으면 십 중 십십으로 한국에서 사 온 귀걸이다. 매번 한국에서 사 온 거라고 하면 아쉬워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해 사다 주니 너무 좋아했다. 귀걸이뿐만 아니라 목도리, 모자도 너무 좋아해 준다.

3. 양말: 왜 이렇게 가끔이지만 한국 양말 찬양자들을 만나는지 몰랐는데, 지내다 보니 한국 양말처럼 저렴한데, 센스 있게 예쁘고 튼튼한 양말이 잘 없다. 웃긴 건 요샌 한국에서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비나에게도 사주고 싶은 양말들이 자꾸만 보였다.

4. 새로 나온 소주: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나보다 소주를 좋아한다. 난 20대 초반에 평생 마실 소주를 다 마신 거 같아, 사실 소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친구들은 종종 모일 때 소주를 사가지고 온다. 그런 친구들에게 독일에서는 구하기 힘든 새로 나온 원소주, 토끼소주, 아니면 전통적인 안동 소주를 사다 주면 좋아한다.

5. 키링: 한국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있는데 유럽의 대다수는 아직도 전자키가 아니라 열쇠를 가지고 다닌다는 거다. 근데 요즘 또 한국에 마침 키링붐이 불어, 너무 귀여운 열쇠고리들이 지하상가나 소품샵에 가면 잔뜩 있었다. 가방에만 다는 게 아니라, 진짜 열쇠에 달 수 있어 유용성도 겸비할 수 있는 선물이다.


물론 모든 걸 다 사다주고 싶지만, 가뜩이나 없는 형편에 이사로 인해 더 가난해진 나는 신중해지기로 했다. 일단 비나가 관심이 많고, 이미 한국 화장품들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화장품을 가져다 주기로 했다. 그러다, 비건의 삶은 화장품에서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몰랐던 한국의 비건 화장품


그러니까, 화장품에도 비건이 따로 있다는 걸, 로고도 잔뜩 박혀있는데 비나를 만나기 전까진 인지하지 못했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도 동물성 재료들이 종종 있는데, 예를 들어, 양털에서 추출하는 라놀린, 꿀벌을 희생시키는 밀랍이나 꿀, 동물 부산물에서 추출하는 콜라겐이나 케라틴, 그리고 동물성 지방에서 추출한 글리세린 등이 있다. 이러한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화장품들이 비건 화장품이다.


크루얼티프리는 또 따로


앞서 말했듯이 비건을 시작하는 이유는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비나의 경우 아무래도 동물에 대한 보호가 중요한 가치관으로써 기여한 것 같았다. 그래서 비나는 그냥 비건 화장품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크루얼티프리(Cruelty-free) 인지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크루얼티프리는 직역하자면 '잔혹함 없이'라는 뜻인데, 말 그대로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반대하는 제품 개발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가장 잘 알려진 바로는 영국 브랜드인 러쉬(Lush)가 있다. 러쉬는 동물실험을 강하게 반대하며 "Fighting agains animal test"로고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다만, 비건은 말했듯이 '소비'에 대한 개념이기에, 비건 제품이라고 해서 당연히 크루얼티 프리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도 새로운 포인트였다.


비건화장품이라, 동물실험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글들도 많이 보았으나 그 둘은 비슷하지만 별개의 구분이기에 비건 화장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동물실험도 하지 않았다고 과신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KakaoTalk_20250130_1112109571.jpg 독일에서 사서 쓰고 있는 러쉬 뒷 면에도 "Wir kämpfen gegen Tierversuche"라는 로고가 있다. 한국어로, "우리는 동물 실험에 반대하여 싸웁니다"라는 뜻.



한국 비건 화장품


K-뷰티가 유명세를 타고 세계 곳곳에서 한국 화장품을 소비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인 비건을 위한 화장품은 아무래도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건들 사이에서도 이미 알려진 한국 비건 화장품 브랜드들이 있었고, 덕분에 눈을 뜬 나도 한국에서 비건 화장품을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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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내게도 보이기 시작한 비건 마크와 표기들. 올리브영에서 파는 휩드와 다이소에서 본 드롭비

1. 멜릭서

> 비건 O, 크루얼티 프리 O

멜릭서는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한국 최초의 비건 화장품일 거다. 그냥 비건일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도 신경을 쓰는 친환경 제품을 추구하고 있다. (많은 비건 제품들이 친환경 역시 함께 고려하긴 하지만, 비건 인증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다.) 가격대는 아무래도 저렴하지 않지만 립버터나 토너가 유명한데, 2만 원 이하로 구매할 수 있어 주위의 비건 친구에게 선물하기 부담스럽지는 않은 가격이다.


2. 휩드

> 비건 O, 크루얼티 프리

결론적으로 비나가 골라서 휩드의 신제품 무화과 팩 클렌저를 사갔다. 휩드 역시 비건 인증 제품들을 판매하고, 포장재 역시 친환경적인 소재들을 추구하는 브랜드이고, 자연에서 나온 식물성 원재료를 토대로 한 매력적인 제품들이 많다. 다만, 크루얼티 프리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동물 실험 여부에 대해 기재가 되어있다면 좀 더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SNS를 중심으로 핫해졌고, 제품 자체에 대한 후기나 브랜드 스토리가 좋아 비나가 선택한 것 같았다. 가격대가 2만 원대 이상으로 시작함이 보통이라 조금 부담스럽긴 하다.


+ 비나의 후기: 아쉽게도 향을 내기 위한 재료 때문인지 작은 트러블이 사용 후에 났다고 한다. 아쉽지만 얼굴보다는 바디제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텍스쳐나 향은 좋으나 가격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일이다.

WhatsApp Image 2025-01-30 at 16.28.35_8a99f795.jpg 비나가 보내 준 사용 중인 휩드 무화과 팩클렌저. 팩으로도 클렌저로도 쓸 수 있다.

3. 조선미녀

> 비건 △, 크로얼티 프리 O

한국에서 이미 잘 팔리고 유명한 제품인데 비건임을 내가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턱에 비건 화장품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제품이 있는가 하면,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한국 화장품 제품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조선미녀'다. 디자인부터 한국에서는 유행하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한방 화장품임을 내세운 브랜드인 만큼 해외에서는 오히려 동양적인 느낌으로 잘 먹히는 것도 같다. 조선미녀의 경우 모든 제품이 비건인 것 같지는 않지만,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건 제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대신, 모든 제품이 크루얼티 프리로, 동물 실험을 하고 있지 않다. 가장 유명한 건 맑은쌀 썬크림인데, 비건이라 비나도 애용하고 있다고 한다.


+ 비나의 후기: 맑은쌀 썬크림은 잘 맞아서 필수템이 되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예전에 추천했던 제품이기도 하다.

WhatsApp Image 2025-01-30 at 16.32.26_6dc269b6.jpg 나도 몰랐던 브랜드이지만 비나는 이미 쓰고 있던 조선미녀, COSRX 제품들. 조선미녀 선크림은 매우 만족한다고 했고 Isntree 제품은 아직 사용해보진 않은 것 같다.


4. COSRX

> 비건 △, 크루얼티 프리 O

마찬가지로 비나를 통해 알게 된 브랜드다. 달팽이 크림 제품류가 유명한 것처럼, 아쉽게도 모든 제품이 비건은 아니지만 대신 크루얼티 프리는 모든 제품에 해당한다. 비건 제품들도 꽤 많아, 비건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도 꽤 있다. 비나는 오일프리 울트라 모이스쳐라이징 로션을 쓰고 있다고 한다.

+ 비나의 후기: 피부에 빠르게 흡수되고 가벼운 느낌이라 여름에 사용하기 확실히 좋은 모이스쳐라이져다. 다른 제품들과 함께 쓰기에도 좋은 느낌이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5. DROP BE (다이소 드롭비)

> 비건 O, 크루얼티 프리 X

가장 부담 없이 선물하기 좋은 건 사실 다이소와 더샘이 콜라보를 해서 내놓은 드롭비 제품들이다. 나도 앰플을 하나 사서 써봤는데 제품 자체도 좋을뿐더러, 가격대도 저렴하다. 다만 크루얼티 프리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는 것을 보아 딱히 크루얼티 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아쉬움은 있다. 부담없는 선물을 찾고있다면 추천한다. 나는 모공케어 앰플을 써봤는데 다시 사 올 의향이 있다.



올리브영에서 신기해서 비건 제품을 이것 저것 테스트 해봤는데, 비건이라고 해서 제품의 기능이 더 떨어진다거나 그런 건 딱히 느끼지 못했다. 이미 한국 화장품들이 너무 좋아 큰 차이를 못 느끼는 것일수도 있지만, 동물성 재료를 대체한 재료들이 사실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인 것도 같아 사실 조금 허무하고 한편으로는 슬펐다. 굳이 피할 수 있다면 동물의 희생을 피한 제품들을 쓰면 좋겠다는 마음이 두 고양이의 집사인 나에게도 들었다. 비건 화장품의 소비가 높아진다면 식물성 원자재의 단가도 좀 더 낮아지거나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비건 화장품의 소비가 더 촉진되는 좋은 원순환이 되지 않을까? 그럼 희생되거나 고통받는 동물들이 줄어드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이게 생각에서 내 소비습관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여전히 편리함의 유혹이 크고, 가격의 장벽이 높아 부끄러운 마음이 따라왔다.



비건이라고 해서 인생의 모든 것이 오로지 동물보호나 환경만을 위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하여 비건인들도 우리와 같은 즐거움과 문화를 소비하기 위한 보다 다양한 비건 제품들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번에 들었다. 한국에서 사다 주고 싶은 선물들이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꽤 많은 제품들이 비건이 아니거나, 크루얼티 프리가 확실히 아니거나 했다. 특히 한국인 친구로써, 내가 써보고 좋았던 제품이나 유행하는 걸 사다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살짝 안타까웠다. 어디에나 비건 옵션이 있어, 더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비나를 만나고서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참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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