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친구 생활백서 EP 3: 비건친구랑 할로윈 파티 2
집에 손님이 온다는 건 늘 긴장이 조금은 되는 일이다. 엄마의 손에 일 꿔지는 부모님 집에 살 때는 몰랐는데, 내가 가꾸는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는 무언가 발가벗겨지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런 것 치고는 난 참 자주 사람을 집에 초대한다. 발가벗겨지는 느낌임에도, 편안한 공간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 생기는 유대감도 좋고, 밖에서 보면 고양이들을 집에 둘 만 둔다는 마음에 마음이 불편하기도 때문인 듯하다.
손님을 초대한 주말 아침이면 일어나자마자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착착 생각해 본다. 마치 J 같다고 내 P형 친구들은 말하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면 늦다고 또 J형 친구들은 말하겠지. 아무튼 그렇게 마음속에서 청소와 요리, 혹은 나가서 사 와야 할 것들을 마음속으로 정리하고야 대개 침대에서 벗어난다.
독일인들이 너무 중요시 여기는 Luften(환기)를 하며 후다닥 청소를 하고 집 앞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왔다. 이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잔뜩인 슈퍼마켓에 Glühwein(글루바인: 따뜻하게 데워마시는 와인)이 나왔길래 좋은 펀치가 되겠다 싶어 리스트에 없었지만 두 병 사 왔다. 서른이 되고 거짓말처럼 급격히 낮아진 건강 수준 때문에 본의 아니게 술을 많이 줄였더니, 장 볼 때 술 사는 손도 적어졌다. 그렇지만 이래 저래 선물 받곤 뜯지 못한 와인과 리큐어들이 집에 있었어서 두 병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어차피 다들 다른 주종을 먹는 게 다반사이니.
집으로 돌아와 집안 단장을 대강 마치자마자 오븐에 넣을 것들을 준비했다. 이 집에는 오븐도 하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도 오븐 트레이도 하나다. 고로 오븐에 들어갈 피자와 소시지롤은 잘 머리를 굴려 순서와 시간을 잘 계산해야 한다는 거다. 우선 비건은 아니지만 논비건 친구들을 위해 준비하는 미라 소시지롤은, 간단히 슈퍼에서 사는 냉장 크로와상 반죽을 길고 얇게(1~2cm 정도의 두께로) 잘라 적당히 핫도그 사이즈의 소시지를 말아 구워주면 된다. 유럽에 살 때 좋은 점은, 이런 빵 반죽이 종류가 다양하고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귀여운 눈과 입을 케첩으로 포인트 삼아 찍어 구웠지만, 굽고 나니 별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좀 더 진지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은 치즈와 김으로 눈을 좀 더 명확히 표현해 주는 것 같긴 한데, 혼자 손님맞이 준비로 음식을 3개 이상하는 날, 그런 걸 하라면 나는 주부 9단쯤 되어도 부족할 거다.
이런 기록들을 남기기 시작한 뒤 아직 적응하지 못한 건 사진의 생활화다. 아쉽게도 준비과정에 찍어둔 사진은 없고, 조급한 마음의 상 차리기가 끝난 뒤에야 조금 찍어두었다.
해마다 할로윈 시즌이 되면 내 알고리즘은 할로윈 컨셉 레시피들로 가득하다. 이번에 수많은 할로윈 레시피 릴스들에서 자주 보인건 단연 해골피자다. 버섯으로 해골모양을 내는 거다 보니, 다른 재료들을 조절하면 손쉽게 해골피자가 될 수 있었다.
1. 토핑: 우선 야채들을 손질해 준다. 양파나 피망, 올리브 등 취향에 맞는 피자 토핑들을 준비한다. 나는 마늘오일(다진 마늘을 올리브 오일에 담가두면 된다)과 적양파, 바질, 그리고 버섯만 간단히 준비했다. 적양파는 채 썰고, 메인 재료인 버섯은 반으로 자른 뒤 모양을 내줘야 한다. 이게 사실 시간도 손도 많이 가는 일인데, 혹시나 플라스틱 빨대가 있다면 눈은 빨대로 쉽게 모양을 낼 수 있다. 신기하게 빨대를 꽂았다 빼기만 해도 그 자리의 버섯이 손쉽게 잘려 나온다.
2. 도우: 마찬가지로 독일 어느 마트에서나 살 수 있던 피자 도우에, 시판 토마토소스를 먼저 발라준다. 피자도우는 대부분 비건이고, 토마토소스도 대부분 비건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치즈가루나 고기가 가미되지 않은 100% 토마토소스를 사는 게 안전하다. 나는 튜브에 든 약간 매콤한 토마토소스를 섞어주었다. 비건 마크가 적혀있지 않아도 100% 채식 재료라고 적혀있거나, 뒤에 적힌 함유 제품에 확신할 수 있는 비건 재료들만 있다면 비건 요리에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3. 치즈: 비건 피자를 나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한다. 치즈가 아예 안 올라간 피자와 비건 치즈(대체가공식품)가 올라간 피자. 비나 덕분에 비건 치즈가 올라간 피자를 먹어봤었고, 우연한 기회에 또 다른 곳에서 비건 치즈를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솔직히 나는 비건 치즈는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치즈를 아예 올리지 않기도 한다고 했기에, 나도 누구나 먹을 수 있게 치즈는 스킵하기로 했다.
그리고 도우 패키지에 쓰인 가이드에 맞게 오븐에 적당히 구워주면 끝이다. 시판 도우는 자칫하면 딱딱해지는 데다 고기도 안 올라간 비건 피자이니, 덜 구워지는 게 오버쿡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을 유의하자. 나는 사실 조금 딱딱해졌다.
사실 이건 전날 조금 준비해 둔 바가 없지 않은데, 위생장갑에 물을 채워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혹시 몰라 세 개를 얼렸는데 두 개만 써도 충분했어서, 한 개는 아직도 냉동실에 남아있다. 너무 많이 넣었다간 자칫 다 녹으면 펀치가 밍밍해질 수 있으니 욕심은 자제하는 게 좋다.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이 사실 저렇게 얼린 얼음 손을 취향껏 만든 펀치에 담가만 주면 된다.
근데 이 간단한 레시피를 더 간단하게 만들려면, 펀치를 직접 만드는 대신 글루바인을 데피지 않고 차갑게 보관하다 얼음과 함께 내면 된다. 10월 말인 할로윈 시즌이 되기도 전부터 독일 마트는 이미 크리스마스를 위한 물건들이 잔뜩이라 이 시즌에 글루바인을 구하는 건 어려울 수가 없다. 그리고 글루바인은 사실 차갑게 먹어도 맛있다. (심지어 끓이기 전이니 도수도 높다. 일석이조다.)
손님들이 도착할 시간 즈음에 맞추어 펀치도 내어놓고, 마침 할로윈을 맞아 마트에서 파는 눈알젤리와 마찬가지로 비건인 후무스까지 꺼내어 놓으니 나름 상이 한껏 찼다. 포틀럭인데 혼자 너무 많이 했나 생각했었는데, 웃기게도 내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술을 준비해 왔다. 마침 술을 많이 준비하지 않았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할로윈 파티는 컨셉이 전부가 아닐까. 컨셉에 진심이지 않으면, 그건 진짜 할로윈 파티라고 할 수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래서 음식을 준비하는 중간중간 전날 미리 잘라둔 검은 박쥐들과, 가짜 거미줄 솜을 테이블, 벽, 집안 곳곳에 배치했다. 의자가 4개밖에 없고 테이블도 초대한 인원보다 비좁아 아예 식탁을 돌려 벽에 붙인 다음 뷔페식으로 준비했다. 역시나 조금 비좁겠지만, 그래도 유럽에선 이렇게 접시를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들 위주로 준비하고 서서 혹은 소파에 앉아서 먹는 경우가 종종 있어 소파를 중심으로 둘러앉으면 될 거 같았다.
친구들은 제 시간보다 다들 조금 늦게 왔고, 일찍 간 친구도 있었지만, 다 같이 둘러앉아 그즈음 나온 로제의 A.P.T 노래 이야기를 하다 아파트 게임을 하기도 하고 깔깔거리고 즐겁게 놀았다. 잔뜩 가져온 술도 나눠 마시고, 누군가 가져온 소주로 술게임도 해보고 하며 순식간에 자정이 되었었다.
대부분의 음식이 비건이라는 데에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건인데도 맛있는 걸 신기해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다 같이 걱정없이 먹고 놀 수 있었다. 할로윈에 비건 게스트가 있는 음식을 준비해야한다면, 1편의 손가락 쿠키나 해골피자를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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