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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 3편

끝내 읽지 못한 편지

by 브라질의태양 Mar 23. 2025



"제가 믿을 사람은 복지사님이랑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밑반찬을 전달하기 위해 모텔방으로 갔더니 대뜸 김씨 아저씨가 본인이 믿는 사람이 나랑 예수님 밖에 없다고 한다. 나를 이 정도로 신뢰하고 있었나 싶어 놀랍기도, 고맙기도 했다.

상현 : "아버님 교회 다니세요?"
아저씨 : "옛날에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안 간지는 좀 오래됐지만 그래도 오래 다녔었죠. 지금은 몸도 안 좋고 여기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안 가고 있습니다."
상현 : "오 그러셨구나. 저도 교회 다녀요!"
아저씨 : "아이고 우째 이런 일이! 복지사님 어디 다니십니까? 복지사님 나가는 데라면 저도 가보고 싶네요."
상현 : "여기서 5분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어요. 오신다면 제가 마중 나가겠습니다!"
아저씨 : "이번 주 갈게요!"

전도가 제일 쉬웠어요. 이건 뭐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도 아니고, 기독교인이라면 다 공감하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전도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이렇게 쉽게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니 고맙기도, 놀라기도 했다.

여하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갈 곳이 생긴다는 것, 거기서 또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점심 한 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번 주부터 오시라 말씀드리고 다시 한번 정확한 위치와 예배시간을 알려드렸다.


일요일!
11시 예배라 10시 5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11시 10분이 되어도 오지 않으셨다. 낯설고 어색했을까. 아님 못 일어 나신 걸까. 지금이라도 찾아갈까도 생각했지만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난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상현 : "아버님! 어제 교회 왜 안 오셨어요. 기다렸는데."
아저씨 : "어? 어제 일요일이었습니까? 제가 핸드폰도 없고 방에 달력도 없어서 무슨 요일인지도 몰랐네요."
상현 : "아이고 그러셨구나. 그럼 제가 이번 주 목요일 반찬 가지고 올 때 달력 하나 가지고 올게요."
아저씨 : "고맙습니다 복지사님. 제가 믿을 사람은 복지사님이랑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짜든지 더위 조심하세요."

목요일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복지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달력을 찾았지만 벌써 8월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 올해께 없었다. 팔지도 않았다. 그래, 8월에 누가 새 달력을 사겠어.

8월부터 12월까지 핸드메이드로 달력을 만들어 밑반찬 나가는 날 마스크와 쓰레기봉투도 조금 챙겨 다시 방문했다.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아버님 복지관 조상현입니다!" 똑똑 방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오전에 반찬을 받으면 점심때라도 드실 건데 싶어 일찍 방문했는데 아직 주무시고 계신가. 몇 번 두드리다 돌아왔다.

목요일 오후 3시 30분
"아버님 복지관 조상현입니다! 밑반찬 가져왔어요!" 분명 방안에 TV소리가 들리는데 아무 대답도 없고 역시,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다. 예전에도 잔다고 오는 소리도 못 들은 적이 있다고 했었다. 잠들기가 어려운데 한 번 잠들고 나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잔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내일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복지관으로 돌아왔다.


금요일 오후 5시 30분
다른 업무로 바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김씨 아저씨 밑반찬을 안 가져다준 게 생각났다! 주말을 넘기면 안 될 것 같아 퇴근 전 부랴부랴 반찬과 달력을 챙겨 모텔방으로 달려갔다.

"아버님 복지관 조상현입니다!" 오늘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다. 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인아주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딸깍.
"305호! 일어나 봐요!" 주인아주머니가 자고 있는 김씨 아저씨를 향해 소리쳤다.
방문 앞에 선 채.

나도 겁이 나 들어가지 못하고 방문 앞에 선 채 "아버님 복지관 조상현입니다. 저 왔어요!" 소리쳤다. 역시나 아무 반응이 없어 용기를 내 다가갔다.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숨을 쉬었고, 이마에서 옆머리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색색-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흔들어 깨울까도 생각했지만 어렵게 잠들었을까 봐, 빚쟁이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고 생각해 화들짝 놀라실까 봐, 주인아주머니께는 "주무시는 것 같아요. 더우신지 땀 흘리고 계시네요." 하고 챙겨간 밑반찬은 냉장고에 넣고 달력과 마스크, 쓰레기봉투는 바닥에 놓았다.

나중에 일어나시면 보라고 짧게 메모도 남겨두고.


토요일 오전 11시.
오랜만에 친구들과 캠핑 가기로 한 날이라 분주하고 들떠있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혹시 조상현씨 되시나요? 통영 경찰서입니다. 혹시 김OO씨라고 아십니까? 오늘 오전에 사망하셨습니다."
"네?..."

분명히 주무시고 계셨는데?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어떤 사이였습니까. 언제 마지막으로 만나셨죠?" 경찰의 물음에 아저씨의 건강 상태, 그동안 만나왔던 얘기 등 차근히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이라는 게 마음에 닿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와락 흐르고 있었다.

그때 내가 깨웠다면 아저씨는 살 수 있었을까, 왜 그냥 돌아왔을까,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저씨 모습이...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에 나는 손 놓고 넋 놓고 그저 우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놀란 친구들은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줬고 조용히 함께 애도해 줬다.


월요일에 출근해 김씨 아저씨에 대한 남은 일을 정리해야 했다.

먼저 주민센터에 연락하니 이미 소식을 알고 있었고 '여동생'이 찾아와 장제비도 신청하고 갔다고 했다.

"여동생분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제 연락처를 그분께 알려주시겠습니까?" 주민센터 직원에게 부탁했고 오래 지나지 않아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제넘은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아이들이 아버지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기억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버님께서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많이 보고 싶어 했고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만나러 가야 한다고 늘 얘기했었어요. 아이들이 나중에 크고 나서 혹시라도 기회가 되면 이 이야기 좀 전해주세요."

모르겠다. 떠난 김씨 아저씨를 위해, 남아 있는 김씨 아저씨의 아이들을 위해서 그냥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눈물을 꾹 참으며 여동생에게 부탁했다.

"고맙습니다." 수년 만에 들려온 오빠의 소식이 허망했는지 '고맙습니다.'라는 말에는 허탈감과 원망, 애증이 섞여 있는 듯했다.


다음은 모텔 주인아주머니를 찾아가 인사드렸다.
"아침에 에어컨 실외기가 안 돌아가길래 올라가 보니... 내가 신고했어요."
"그동안 신경 써주시고 살펴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김씨 아저씨 방에 놔둔 물건이 있어서 잠깐 올라갔다 오겠습니다."

그곳엔 더 이상 김씨 아저씨가 없었고 끝내 읽지 못한 편지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3평 남짓한 이곳에서의 김씨 아저씨의 삶에 조금이라도 닿아보기 위해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달력에 시선이 닿았다. 그렁그렁하던 눈을 꿈뻑일 때마다 눈물이 투둑투둑 떨어져 발등을 찧었다. 그때 내가 깨웠더라면...

멈추지 않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김씨 아저씨와도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안치되어 있는 봉안당으로 갔다.


'달력 가져왔어요 아버님. 미안해요. 더 잘 도우지 못해 미안해요...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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