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DEMIURGOTH

아직 동녘 하늘이, 마치 전날 밤 과음한 거인의 퀭한 눈꺼풀처럼, 희뿌윰하고 게으르게 열리던 그 시각, 그리하여 밤새 돌바닥 위에 맺혔던 냉기가 마치 인색한 집주인처럼 쉽사리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바로 그 시간에, 마리안느는 어김없이 광장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광장의 오래된 분수대 옆에 끈질기게 자라나는 잡초와도 같아서, 뽑아내기엔 너무 익숙하고 그렇다고 딱히 아름답지도 않아 누구도 특별히 눈여겨보지 않는, 그런 종류의 영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거친 삼베로 얼기설기 엮은,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누더기에 가까운 옷을 걸친 그녀의 모습은, 귀족 부인들의 반짝이는 비단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차라리 신성 모독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땅의 때와 노동의 고단함이 덕지덕지 묻어난 그 행색은, 그녀 또한 이른바 '낭만의 시대'와는 하등 상관없이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필멸자 중 하나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밤만 되면 가마솥에 비밀스럽고 음험한 무언가-실은 감기에 좋은 야채스튜였겠으나, 의심 많은 이웃들은 필시 두꺼비 눈알이나 박쥐 날개 따위를 넣었으리라 수군거렸을 것이다-를 몰래 조제하고, 낡은 빗자루나 대걸레에 마법이라도 걸어(그녀의 집에는 말 한 필은커녕 당나귀 새끼 한 마리도 없었으므로) 밤하늘을 쏘다니는 요녀로 의심받는다 해도 딱히 항변하기 어려울 법한, 그런 종류의 고독과 궁핍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투박하고 갈라진 손길 아래, 밤새 젖은 헝겊으로 문질러(그것이 사과의 광택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을 풀기 위한 운동인지는 불분명했지만) 그럭저럭 상품 가치를 부여받은 사과들이 낡은 나무 상자 위에 위태롭게 쌓여 갔다. 어떤 것은 젊은 처녀의 뺨처럼 발그레한 홍조를 띠고 아침 햇살을 유혹하듯 반짝였고, 또 어떤 것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숫총각처럼 시퍼런 풋내를 풍겼으며, 간혹 전날의 판매 경쟁에서 밀려나 상처 입은 자존심처럼 한쪽 귀퉁이가 멍들거나, 인생의 고뇌를 미리 겪은 듯 주름진 사과들도 체념한 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리안느는 이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 사과들은 단순한 과일 덩어리 이상이었다. 그것은 빌어먹을 척박한 땅과 신의 변덕 같은 날씨에 맞서 그녀가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였으며, 그녀의 텅 빈 배를 채워줄 몇 푼의 동전과 맞바꿀 유일한 담보물이었고, 어쩌면 세상의 발길질 속에서도 꾸역꾸역 익어가는 그녀 자신의 초라한 존재와 가장 닮은 것들이었다. 그녀는 사과 하나를 들어 올리며, 그것이 지닌 찰나의 붉고 푸른 빛깔과, 마치 사기꾼의 눈물처럼 맺힌 이슬방울을, 그리고 곧이어 나타날, 흥정에는 능하지만 지갑은 닫혀 있는 고객들의 까다로운 눈길과 입맛을 무표정한 얼굴로 가늠했다.


마을 사람들이, 마치 겨울잠에서 덜 깬 곰처럼, 느릿느릿 집 밖으로 기어 나와 광장으로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는 동안, 마리안느는 말없이 자신의 작은 왕국을 지켰다. 그녀의 등 뒤로는 성벽의 육중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위에서는 까마귀들이 마치 장례식 조문객처럼 불길한 울음소리로 아침 인사를 대신했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농부들의 장화 소리(그 밑창에는 어젯밤 술집에서 묻혀 온 토사물 자국이 선명했을 것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대장간의 쇠망치 소리(아마도 누군가의 부러진 쟁기를 고치거나, 혹은 아내에게 휘두를 쇠몽둥이를 벼리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악다구니에 가까운 외침들이 뒤섞여 아침의 혼란스러운 교향곡을 연주했지만, 그 모든 소란 속에서도 마리안느의 주변은 마치 교회 묘지처럼 적막했다. 그녀는 주변의 야단법석에 초연한 듯,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것에 진저리가 난 듯, 자신의 사과들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서 비껴난 섬처럼 버티고 섰다. 그녀의 깊고 메마른 눈동자는 때때로 광장을 오가는 인간 군상을, 마치 시장 좌판에 널린 생선들을 훑어보듯 무심하게 응시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자신의 낡은 신발 끝이나, 혹은 저 멀리, 신의 분노처럼 솟아 있는 산맥의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그 시선 속에는 사과 몇 알로 하루를 연명해야 하는 여인의 고단함과 더불어, 이 지긋지긋한 세상과 그 속의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깊은 냉소와 체념이 뒤섞여, 쉬이 읽어낼 수 없는 불가사의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이것이 마리안느의 삶이었다. 매일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형벌처럼, 사과를 광장으로 끌고 나오고, 해가 서산 너머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 돌부처처럼 앉아 파리나 쫓으며 손님을 기다리다가, 결국 팔리지 않아 더욱 시들해진 사과들을 도로 거두어, 쥐나 들끓는 그녀의 비좁고 음습한 거처로 돌아가는, 지독하게 예측 가능하여 오히려 절망적인 날들의 무한 반복. 그러나 그 지루하고 남루해 보이는 일상 아래에는, 그녀 자신조차 가끔 잊어버리는, 웃음보다는 한숨이, 풍요보다는 결핍이 훨씬 더 두껍게 쌓여 있는 한 여인의 기나긴 역사가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파는 사과들처럼, 어떤 날은 뜻밖에 달콤했고, 대부분은 지독하게 시큼했으며, 때로는 벌레 먹고 썩어 문드러진 채로, 그렇게 그녀의 인생 또한 희극과 비극의 실타래를 아무렇게나 엉클어 놓으며 묵묵히, 그러나 집요하게 흘러왔던 것이다. 그녀의 이마에 팬 깊은 주름과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손마디에는, 그 길고 긴 시간의 풍파와 싸구려 와인보다 더 독한 사연들이, 해독 불가능한 고대 상형문자처럼,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은 채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하루가, 어제와 놀랍도록 똑같은 표정으로, 그녀 앞에서 그 지루하고도 불가해한 이야기의 다음 페이지를 무심하게 펼쳐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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