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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그리고 복숭아

고난의 삶 끝에 찾은 행복

by 호수공원 Jan 22. 2025

축 늘어져 배까지 닿을 듯 한 가슴

거뭇한 점박이 얼굴

수차례 세월 길 지나간 무지개 같은 주름     


이웃집 할머니는

그늘 아래 앉아 복숭아 먹고 있다     


손바닥처럼 뽀얀 속살 

연 분홍빛 발그레한 빛깔 복숭아가

오래 전 할머니의 새색시 얼굴 같다     


매일 술 독에 빠져 살았던 남편에게 맞은 얼굴

땅에 떨어져 멍든 복숭아처럼 보인다     

이빨자국이 할퀴고 간 복숭아의 흐르는 물은

매서운 시집살이로 고된 할머니의 슬픈 눈물 같다     


눈부신 햇살, 그늘 아래 할머니

복숭아 다 드시고 남은 씨를 오물오물거린다


그 모습이 이제는

달달한 사탕을 먹는 것처럼 평안하다     




이 시는 결혼하기 전에 쓴 시로, 그때에는 친정 부모님과 한 주택 단지에 살고 있었어요. 같은 주택단지에 살았던 어떤 할머니가 있었는데,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손자와 단둘이 사는 할머니였어요. 매일 밖으로 나와 계신 할머니께 저는 "안녕하세요."라고 꼬박 인사를 드리면, 저한테 친근하게 한 두 마디 대화를 건네 셨던 기억도 나네요. 어렴풋한 기억으로 엄마말이, 손자와 사는 할머니댁에 아들내외가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고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무슨 사연일까? 궁금했어요. 아들내외가 하늘로 갔을까? 

아님 무슨 사연으로 의절을 한 걸까? 그런 궁금함 속에 동시대 살고 있는 할머니들 할머니처럼 가슴속에 사연 하나씩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한국인에게만 있는 '한'이라는 정서도 굴곡이 많은 한국인의 속에 녹아 있다고 생각하여 이 시를 쓰게 된 것 같아요. 

결혼하기 전에 저는 숫기도 없고 해서 항상 할머니께 짧은 인사만 했는데,  지금은 아이 둘을 낳은 아줌마가 되어 너스레가 좋아져 지금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면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말을 더 붙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결혼을 하고 첫째 임신을 하고, 그곳에선 마땅히 아기를 출산할 곳이 마땅치 않아 다시 친정집에 가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또 계셨어요. 만삭이 된 저를 보며 뿌듯해하셨던 할머니의 그 고운 미소가 떠오르네요.



브런치 글 이미지 1

  <78세부터 101세까지 하늘나라로 가기전 그림을 그렸다던 미국의 국민화가로 불리던 모지스 할머니>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든 다는 것에 또 다른 행복을 느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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