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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인생의 회전목마

by 호수공원 Feb 26. 2025

  ‘인생’이란 참 순탄치가 않다.

20대에 나는 주간에는 일을 다니고 일을 마친 후에는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가까스로 전문대학을 졸업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처럼 팍팍한 삶에 윤활유를 붓는 듯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란 ‘삶’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 당시,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조금은 넓어지긴 했다. 그렇지만 삶에 대한 기대는 금물, 조직적인 직장생활은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것처럼 퇴사와 이직을 반복했던 나는 불투명한 미래가 그저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책과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우여곡절 끝에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 ‘독서 논술 강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벌이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점차 수업하는 학교를 늘려가며 수업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장점이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를 받아주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좋았다. 직장을 다니는 또래 친구들보다 프리랜서라 수입이 많지는 않았다. 들쭉날쭉한 프리랜서 월급에 넉넉한 적금통장 하나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나와 맞는 옷이라 여기며 직장생활보다 더 오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러. 나. 앞서 말했듯이 ‘삶’이라는 생의 끈은 얌전한 고양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강사가 된 지 5년째가 되었을 때, P정부 시대의 일이다. P정부는 청년들에게 일자리 제공을 빌미로 방과 후 학교 위탁 업체를 설립한다고 했다. 그리고 더 좋은 조건을 내세워 학부모들의 설문을 통해 기존의 강사들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여 새로운 강사를 학교에 심어준다고 하는, 학기 초부터 그런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하루아침에 웬 날벼락인가!! 아무 탈 없이 일하던 학교 몇 군데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나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침대에 누워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데, 내 수업을 듣는 한 아이의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장문의 카톡, 내 수업에 불만이 있으신가? 이러다 정말 거리에 나 앉게 되는 거 아니야? 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이것을 자신의 나이만큼 보내지 않으면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뭐야! 행운의 편지잖아.'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 저는 반사할게요.’라고 답문을 보냈다.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에 그렇게 라도 보내는 것이 나한테는 불행을 피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겨울 어느 날, 그날은 내가 수업하는 다른 학교들보다 애정이 있는 학교에 수업을 가는 날이었다.

학교 주변에 공연장이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자유분방하고, 엉뚱하거나 창의력이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저학년 교실을 빌려 수업하였다. 교실에는 겨울철에 할 수 있는 놀이 ‘제기’가 있었다. 저학년 A반 수업이 끝나고, 미나(가명)가 갑자기, 태권도 발차기를 보여 준다고 했다. 저학년 아이들은 가끔 충동적이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미나의 신발주머니를 내 허리만큼 세웠다. 미나는 기합 소리를 내며 힘차게 발길질하였다.

나는 미나의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하여 큭큭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 주가 흘러 수업이 끝나고 미나가 이번에는 노래를 불러준다고 했다.

자신의 아빠가 매일 듣는 김연우의 ‘이별택시’ 라며,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은 처음인가요~~~”

해맑은 아이의 목소리에서 찌질한 남자의 이별 노래라니, 나는 더는 들을 수가 없어 노래를 중단시켰다.

특유의 귀여움으로 나를 웃게 해 주던 미나와 수업하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그날은 미나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오늘은 아빠가 데리러 오기로 했거든요.”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고?’ 나는 좀 놀란 표정으로 미나를 보았다.

“우리 아빠, 회사 안 나가고 집에서 쉬고 있어요.”

남자아이들은 수업이 끝났는데도 집에 가지 않고, 교실에 있는 제기를 차고 있었다. 아직 저학년이라 다소 짧은 발길질로 5개 정도 하면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내가 교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미나 아빠가 왔다. 미나는 반가움에 아빠한테 달려갔다. 미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뒤돌아 칠판을 지우고 있는데 어느샌가 미나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제기를 차고 있었다. 뭐, 한두 개쯤 차고 가시겠지,  했는데,  갑자기 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30개... 40개... 50개... 우와 아저씨!! 너무 잘한다! 정말 짱! 이예요!!”

맙소사! 나는 교실을 빌려 쓰고 있던 터라 수업이 끝나면 자리를 비워 줘야 함을 알기에 같이 있던 교과 담임선생님을 슬쩍 보았다. 눈치를 주거나 그런 선생님은 아니셨는데, 나는 살짝 눈치가 보였다.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미나 아빠는 세상에 있는 근심, 걱정, 두려움, 불안, 슬픔, 우울, 괴로움, 책임감, 중압감 등등 모든 나쁜 감정 들을 제기를 차면서 뻥뻥 날려 버리는 것 같았다. 정말 그의 모습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소년처럼 티 없이 해맑고 행복해 보였다. 미나는 평소보다 으쓱해진 어깨로 아빠와 집으로 돌아갔다.

결혼을 해 보니 가장이 된 남편을 보면서 나는 그제야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걸까?




  이야기의 에피소드들은 재미를 위해 순서를 바꾸어 보았다.

나는 정부의 압력으로 실업자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기존에 있던 강사와 새로운 위탁 업체의 강사가 다시 면접을 봐서 학교에서 일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슬럼프까지 와서 나는 일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순수한 아이들은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생각과 마음가짐이 달라진 선생님을 미세하게나마 느낀 것일까? 나름 변함없이 아이들을 대하고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때론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고 뿌듯함도 느끼곤 했는데... 평생 직업으로 여기며 생각했던 일이... 앞날에 대한 막연함과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다.

학기 말이 되자, 스산한 나쁜 기운은 내 안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었다.

위탁 업체를 강사를 영입하여 기존 강사들에게 해고를 통보한 학교와 강사에 대한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강사 채용에 대한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학교도 있었다. 내가 5년 동안 일하고, 애정이 있었던 그 학교에서는 면접 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닥쳐온 차가운 현실에는 강해지는 법! 나는 위탁 업체 강사를 채용하지 않는 방과 후 학교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다.

과연, 막혔던 일이 잘 풀릴 수 있을까? 나는 또 일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전화위복’ 불행했던 것이 오히려 복이 된다!! 나는 전에 일하던 학교들보다 학생수도 많고, 더 좋은 근무 환경의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난날, 다가올 앞날에 대한 걱정의 깊은 한숨들의 나날들에서 ‘이제 살았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어둡고 깜깜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을 때, 그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는 폭죽의 아름다운 불꽃처럼, 내 마음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 히사이시조의  ‘인생의 회전목마’라는 곡이 있다. 

누군가 말을 해서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인생은 ‘회전목마’처럼 오르락내리락하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원처럼 빙글빙글 도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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