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의 고백
“목욕은 이제 안 하려고.” 이쓰미는 남편을 본다. 서른다섯 살 자신보다 한 살 연하의 남편인 겐시는 밤이면 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인다.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이쓰미는 겐시가 푹 젖어서 집에 온 한 달 전쯤에 일을 떠올려 보았다. 겐시가 다니는 영업 회사 신년회 술자리에서 흥이 올랐고 상사가 영업실적이 좋은 한 후배에게 맥주를 뿌렸고, 그 후배는 그 상사에게 맥주가 아닌 물을 뿌리려다 겐시에게 물을 뿌렸다고 했다. 겐시는 그 후배의 상사였고 후배에게 물세례를 맞고도 다시 그 후배에게 물을 뿌리지 않을 만큼 착한 겐시는 그날은 좀 우울해 보였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 겐시는 수돗물에서 냄새가 나서 몸에 닿으면 가려운 기분이라며 그렇게 냄새나는 것이 몸에 닿는다고 생각하니 싫다고 하였다. 여태까지 그 수돗물을 쓰며 도쿄 도심에서 쭉 자라온 겐시는 2리터에 생수로 수건을 적셔 얼굴을 닦는 것이 전부였다. 겐시는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로 씻고 비누칠도 하지 않은 채, 생수로 몸을 헹구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왜 제대로 씻지 않는 걸까? 머리를 감고, 세수하고 샤워로 마무리하는 일상 속 사람들처럼, 겐시는 주기적이고 일반적인 일정한 궤도를 벗어나려 하는 걸까? 순간, 어릴 적 보았던 영화 ‘그렘린’이 떠올랐다.
작고 귀여운 기즈모가 몸에 물이 닿으면 괴물로 변하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정글 같은 이 세상에서 괴물처럼 무섭고 나쁜 사람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영업직의 회사원이 있다. 버티고 버티다가 버틴 날들 속에서 회사 후배에게 마저 물세례를 맞은 날, 겐시는 그 순간 자신이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삶의 무언가가 무너져 버렸을까? 물에서 냄새가 난다고 한 것은 도심에 수많은 사람, 하늘 높이 솟은 빌딩들, 수많은 쓰레기, 수많은 자동차로 인한 도심의 오물들이 한 데 섞여 그에게만 느껴지는 지독한 냄새였을까?
겐시가 목욕을 하지 않은 지 3개월이 흘렀다. 겐시는 탈취제를 몸에 뿌리고 다닌다. 그래도 냄새는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쓰미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시어머니는 겐시의 이상행동 때문에 겐시의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며, 겐시를 병원에 데려간다고 하였다.
다시 일주일 후, 이쓰미는 또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겐시가 ‘사내 괴롭힘’을 하고 있다며 개선이 되지 않으면 더 이상 영업일을 못 할 것이라고 듣게 된다.
‘사내 괴롭힘?’이라 들으니, 내가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여기에 쓰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
그녀는 20대 초반 사회 초년생이었다. 그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녀 언니의 절친 아빠가 운영하는 ○○지방법원 앞에 있는 합동 법무사에 경리, 사무직원으로 취업하였다.
그녀는 취업하고 너무나 좋았다.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하기 전, 그녀는 고등학생 당시 공부에는 별 뜻이 없어 졸업하기 전, 대형 서점에서 일하였다. 그토록 싫었던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그녀가 처음 겪어 본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식과 교양을 파는 곳이라 하지만, 막상 거기서 그녀가 하는 일은 막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렇게 쓰라린 첫 사회생활을 하고, 그때부터 그녀는 대학에 가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더 나은 조건에 회사에서 일하리라, 학력 중심 사회에서 직업 선택의 폭을 넓히고 싶었다.
법무사 사무실 직원이 되었으니, 4대 보험이 되는 회사이기에 산업체로 야간에 전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어
막연하기만 했던 ‘대학’이라는 문턱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들뜬 마음도 들었다.
그녀는 그렇게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합동 법무사 사무실에 첫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서는 그녀의 직속 법무사(언니의 절친 아빠)인 A법무사님과 B법무사님, C사무장님, A법무사에 이름을 빌려 일을 하는 E실장, J과장, B법무사님에 이름을 빌려 일을 하는 L실장, L과장, K과장, 그리고 그녀의 파트너 Y대리까지 합동 법무사라 비교적 북적이는 사무실에서 그녀는 일하기 시작했다.
회사 대표라는 지인의 낙하산을 타고 온 그녀에게 사람들은 잘 챙겨주었다. 그녀 또한 적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구청을 비롯한 관공서에 다니며 서류를 떼고 부동산 서류를 작성하여, 도심에 있는 법원들을 동분서주하며 각종 법률 서류를 접수하는 일을 하였다. 퇴근할 때는 정산을 마무리로 하면서 회사에 차츰 적응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원하던 전문대학교 원서를 접수할 시기가 다가오자, 그녀는 먼저 회사에 대표분들한테 대학 입학에 대한 허락을 구했다. 윗분들은 착실하게 일하는 그녀를 믿고 허락해 주셨다. J과장과 K과장은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E실장과 파트너 Y대리도 그녀의 결심에 응원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L실장과 L과장이었다. 회사의 막내로서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하던 그녀가 대학을 간다고 하니, 그녀가 하는 불편한 일들을 자신들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L실장과, L과장은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싸늘하게 변했다. 그들은 그녀를 지지했던 Y대리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같이 합세하여 그녀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일을 할 때만 그녀를 부려 먹고는 밥을 먹을 때에는 그녀를 빼고 자기들끼리 먹으며 그녀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퇴근 후 하는 인사도 ‘쌩’ 하니 받아주지 않았다. 특히 L실장은 회사 사람들 앞에서만 잘해주고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는 항상 갈구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녀한테는 처음부터 변함없이 그녀를 챙겨주는 E실장이 있었고, 그녀를 딱한 눈으로 바라보는 K과장이 있었다.
그녀는 고된 직장생활과 야간으로 대학 다니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대학을 졸업 하려면 학기 신청 직전까지 4대 보험 중 하나라도 납입한 증거가 있어야 다음 학기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몹시 힘들어도 꾹 참고 회사에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1학년 1학기 수업을 마치고, 2학기를 다닐 무렵이었다. J과장이 A법무사님의 지인의 회사설립을 위해 자본금을 가지고 법원에 서류를 신청하러 갔을 때 일이다. 비가 세차게 오던 날, 그녀의 회사 사람들은 연락이 안 되는 J과장이 혹시 사고라도 났을까? 하며 걱정했다.
며칠이 지나도 소식을 알 수 없는 J과장, 사무실에는 J과장을 찾는 전화가 빗발쳤다. J과장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었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날, J과장은 법원에 서류를 접수하기 전 1억 원의 회사설립 자본금을 갖고 도망을 가버렸다.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E실장도 J과장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고 했다. E실장은 한숨이 섞인 담배를 피우며 같이 일하는 직원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써서 제출하였다. J과장은 자신의 집도 대출받아 식구들을 거리에 나앉게 했다고... 항상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던, 마냥 사람 좋았던 J과장이었기에 그녀는 물론 회사 사람들은 그에게서 받은 충격과 배신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J과장은 횡령죄로 구속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다. 이 일로 무려 1억 원의 손해를 본 A법무사님은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크나큰 충격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일로 L과장과 L실장은 그녀의 소속인 A법무사님이 일을 그만두게 생겼다며, A법무사님의 소속인 그녀 또한 그만두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그녀의 퇴사를 종용했다. 고된 직장생활이지만,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다니려던 회사를 그만 다녀야 할 생각에 그녀는 참담했다.
그녀는 그렇게 잘 다니던 회사를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학교 근처 건축 현장 사무소에서 사무보조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악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와 사이가 좋았던 E실장과 그녀의 사이를 이간질해서 싸우게 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퇴직금을 쥐고 있었던 L과장은 그녀가 그만둔 회사까지 다시 나오게 하여 서류 작업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피해 주말에 퇴사한 회사까지 가서 서류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나오는 ‘그녀’는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다시, 소설 속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 후 겐시는 이쓰미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떤 ‘강’을 보게 되고 수영이 하고 싶다고 말하고, 이쓰미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저런 ‘강’이 있다고 말한다.
며칠 후, 이쓰미는 겐시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 그 ‘강’에 겐시를 데려간다.
겐시는 양말을 신은 채 알몸으로 그 강물에 몸을 적셔본다. 겐시는 그 차디찬 강에서 수영을 하면서 다시금 활력을 찾는다. 그리고 겐시는 이쓰미에게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그가 안 씻은 지 5개월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쓰미는 활력을 되찾은 겐시를 보며, 남편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강가 주변에 있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집에서 살기로 한다.
이쓰미는 겐시와 마트에 간 적이 있었다. 냄새가 나는 겐시를 보며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지만 이쓰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쓰미는 고향에 있는 시청에 계약직 일을 시작한다. 겐시는 여전히 비누칠을 하지는 않지만, 매일 강가에서 몸을 씻는다. 그 이후 겐시는 몸에서 나는 냄새가 덜해짐을 느끼며 이쓰미와 보통의 일상들을 보낸다.
나의 이야기
나는 그 이후 건축 현장 사무소 외에 다른 직장들을 다니며 학업을 이어갔고, 가까스로 전문학사 2년의 과정을 마쳤다. 시간이 흘러 30대 초반에는 다른 대학의 학사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다.
전문학사 졸업을 하고 몇 개월 후, 나를 힘들게 했던 그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파트너 Y대리한테 전화가 왔다.
“○○씨, 잘 지내지? 다름이 아니라 ○○씨 요즘 어떻게 지내? 나랑 또 같이 일할 생각 없어? 전에 일했던
L과장, L실장도 사무실에 없어. 글쎄 K과장이 B법무사님 도장을 무단으로 찍고 다녀서 법에 걸려 B법무사님영업정지 당하셨어. 그래서 L실장, L과장, K과장 다 사무실에서 쫓겨났어. 지금은 사무실에 A법무사님하고
나하고 E실장만 남았어. 이제 ○○씨 괴롭히는 사람들도 없어. ○○씨, 나랑 정말 잘 맞고 좋았잖아. 그러니까 나랑 같이 일하자.”
나를 괴롭혀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 그간 쌓였던 응어리진 묵힌 감정이 말끔히 해소되었다. 나는 Y대리에게 생각해 볼게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 후, 다시 Y대리 전화가 왔고 나는 거절하였다.
두 달 전, ‘샤워’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이야기 속의 나오는 주인공이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흥미 있었다. 이야기의 결말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찾은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에 찌든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서평을 쓰고 싶었다. 그리하여 얼마 전, 다시 이 책을 도서관에 가서 대여하려 했으나 ‘대출 중’이었다. 그사이 전도유망한 ‘기상캐스터’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다는 참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특별한 날 빼고는 매일 M사의 ‘930 뉴스’로 매일 그녀를 보았기에 친숙함이 느껴져서인지 더욱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똑 부러지게 날씨를 알려주던 그녀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하였다니,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였다.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누르기까지 이 글을 쓸지, 말지, 고민하였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 다음 세대에는 더 이상 이러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자전적인 이야기는 처음에 내가 아닌 타자인 3인칭 ‘그녀’로 시작하여 끝부분은 1인칭인 ‘나’로 마무리 지었다. 그저 낯선 남의 얘기가 아닌 ‘나’라는 시각에서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이 글을 쓰다가 또 다른 참으로 안타까운, 슬프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학교’라는 무엇보다 안전한 곳에서 목숨을 잃은 한 여자아이... 내년에 학부모가 되는 나는 한동안 슬픔과 분노가 섞인 복잡한 감정 속에서, 우리 아이들을 지키려는 마음에 더욱 강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내 경험을 빌어 ‘권선징악’을 믿는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그에 마땅한 처벌을 꼭!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사회에 악의 무리가 다 사라지고 보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이들이 꿈을 펼치고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