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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니?

넌 나를 기억할까?

by 호수공원 Mar 17. 2025

성훈(가명)이를 만난 건 십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 방과 후 독서 논술 강사일을 할 때였다.

당시 성훈이는 1학년이었다. 저학년 남자아이들은 에너지가 상당해서 아주 몇몇 아이들을 빼고는 걷는 법이 없다. 계단이며 복도를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그래서인지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갔다 온다고 보내면 무릎을 다쳐서 오곤 했다. 저번주에 멀쩡했던 아이가 그다음 주에는 친구가 계단에서 밀었다며 팔에 깁스를 하고 온 적도 있었다. 그렇게 상처가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걱정스러워 물어보면, 남자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지를 걷어 올리거나 긴팔 소매를 걷어 올려 자신의 상처들을 보여 주었다. 가만히 있으면 몸살이 난 것처럼 들썩이는 남자아이들이 통제가 안 되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런 귀여운 맛이 있었다.

성훈이는 보통 남자애들보다 더 힘든 아이였다. 수업을 할 때도 무척 산만했고, 같이 수업을 받는 친구들을 한 명씩 다 건드렸다. 여자아이 머리를 잡아당기는 것은 물론, 남자아이들을 때리고 도망가거나 일부러 세게 부딪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은 항상 “선생님 성훈이가요.” 하며 나에게 일러바쳤다. 성훈이는 나에게 매번 혼나는 그런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리는 성훈이에게

“너 그렇게 친구들한테 장난치면, 친구들이 널 싫어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라는 말에도 성훈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관없는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노는 시기에 성훈이의 말은 의아스러웠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성훈이의 담임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나는 성훈이에 대해서 말을 하였다. 그러자 선생님은 웃으며 “성훈이 너무 귀여워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담임선생님은 분명 성훈이에게 애정이 있는 것 같았지만, 항상 잘 웃는 성훈이가 귀엽긴 해도 항상 말썽을 부리는 아이라서 딱히 정이 가진 않았다. 

‘나도 성훈이를 다른 아이들처럼 예뻐할 수 있을까?’ 또래보다 작은 키, 깡마른 체형, 동그란 얼굴, 웃을 때마다 보이는 하얀 이 사이로 충치가 가득한 아이. 그 까만 충치처럼 내 속을 까맣게 조금 태우기도 했던 성훈이였다. 나는 그날 이후부터 성훈이를 유심히 관찰하기로 했다. 출근할 때면 방과 후 수업이라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서 놀고 있었다. 성훈이가 보였다. 항상 놀이 중심에 있는 아이, 아이들은 성훈이를 끊임없이 고자질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성훈이와 같이 놀고 있었다. 

‘대체 성훈이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인 ‘동시 짓기’를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의 동시는 순수한 마음이 생생히 살아 있는 글이라 절로 웃음이 나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절로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저학년 여자아이들은 엄마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 동시를 짓는 반면 남자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놀이터 같은 사물 위주로 동시를 지었다.

로봇에 대한 동시를 지을 때면 “내 친구 로봇 /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라고 짓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성훈이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로봇에 대한 동시를 지었다.      


로봇아 미안해

내가 널 많이 사용해서 미안해.     


로봇을 가지고 놀 때 망가트리기만 할 것 같은 성훈이가 이렇게나 예쁜 마음씨를 가진 아이였다니... 

나는 그 짧은 두 문장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성훈아, 너 마음이 너무 착하다! 동시를 너무 잘 썼네.” 

나는 성훈이한테 아낌없는 칭찬을 해 주었다. 성훈이는 부끄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한 주가 흐르고, 아이들은 또 성훈이가 친 장난에 나에게 일러바쳤다.

성훈이의 선하고 예쁜 마음을 알고 있기에,

“성훈이가 너랑 놀고 싶어서 그래. 네가 좋은데 표현을 잘 못해 서툴러서 그런 장난을 치는 거야. 

  성훈이가 너한테 장난치면 수업 끝나고 같이 놀아.”     

그렇게 성훈이는 나와 3학년 2학기 전까지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성훈이가 수업을 할 때마다 말썽을 부려 속상하게 할 때면, 나는 성훈이가 지은 동시를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지금쯤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성훈이는 키는 좀 컸을까? 살은 좀 쪘을까? 밝은 그 모습 그대로 자랐을까? 

겉으로는 투박해도 속마음은 따스한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매일 보는 담임선생님과 달리 일주일에 한두 번 잠깐 보았던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방과 후 강사로 5년 넘게 일을 해서 많은 아이를 만나고, 그만큼 많은 작품을 보았지만, 성훈이가 지었던 그 동시의 여운은 아직도 내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따스한 봄이 찾아왔다. 화단에 예쁜 꽃들은 활짝 웃고 있지만 나무에 뻗어 있는 나뭇가지는 앙상하다. 

올해에 나는 동네 아파트 센터에 있는 도서관 글짓기 강사로 취직하여, 아이들의 모집을 기다리고 있다. 

신규 강좌라 정원만큼 채워지고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작년에는 동네에서 좀 떨어진 도서관에서 다른 과목의 수업을 했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일하는 곳에서 오랜만에 보는 아이들이라 반갑고 좋았지만, 그만큼 아이들의 글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글짓기 수업을 시작하고, 아이들 특유의 순수한 생각과 해맑은 마음을 담은 아이들의 글이 보고 싶다. 과연 올해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글짓기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메마른 나뭇가지에 영그는 꽃을 기다리며,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꽃처럼 활짝 피어나길 바란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이다.

 꼬마 성훈이가 봄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잽싸게 뛰어가고 있다.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는 아이들 또한 환하게 웃으며

“성훈이 잡아라! 너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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