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마법 천자문을 보는 게 낫겠다

주역 에세이

by 고시린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음양에서 출발해 8괘, 64괘로 몸을 불리고, 10개 카테고리에 이르는 화려한 해설로 끝을 내기까지 주역의 형성 과정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풍성하고 한 치 오차 없이 매끄러워 보이는 주역의 형성사는 순전히 거짓이다.


출발하는 순간부터 착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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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천자문》이라는 아이들 학습 만화책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처음 나와 지금껏 500만 부 넘게 팔렸다는 전설적 만화다. 희대의 고전 《서유기》를 변주했다. 주인공도 손오공이다.

아주 옛날, 한 곳에 모여 있던 한자들이 사고로 인해 세상 곳곳에 흩어진다. 그 세상을 혼세 마왕과 그의 부하들이 지배하려 한다. 화과산에서 태어난 영웅 손오공이 그에 맞선다. 그때 싸움의 무기가 바로 한자 파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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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쪽이 “불어라, 바람 풍(風)!”을 외치며 공격하면, 방어하는 쪽에선 “막아라, 손 수(手)!”로 맞선다. “타올라라, 불 화(火)!”로 불 공격을 펼칠 수도 있고, “흘러넘쳐라, 물 수(水)!”로 물 공격을 퍼부을 수도 있다.

《마법 천자문》을 앞에 둔 채, 아이들은 손오공이 펼치는 어드벤처 활극에 주목하고, 부모들은 책 한 권에 한자 스무 개가 잘 등장하는지, 한자 능력 시험에 필요한 수준은 맞추고 있는지 신경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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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있는 사람의 관심사는 물론 다르다.


수많은 한자가 산과 들에 버려진 채 주인을 기다렸다는 작품의 설정 자체가 관심사다.


주역의 시작도 그랬기 때문이다.


주역 역시, 이곳저곳에 버려져 흩어진 메시지의 파편들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음양이 자신의 논리를 확장해 64괘에 이르렀다는, 그러니까 주역이 순수하고 완전한 연역의 결과라 보는 생각은, 허구다.


연역은, 대부분 경우 사후 약방문이다.

뒤늦은 상상이며, 강박이며, 감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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