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전 세상에 나왔다가 황당한 이유로 사라질 뻔한 책이 있다.
《벽암록(碧巖錄)》이란 고전이다.
《벽암록(碧巖錄)》은 위대한 책이다. 선불교의 다양한 텍스트들 가운데 최고라는 의미에서 ‘종문 제일(宗門第一)의 서(書)’란 별칭이 붙기도 한다. 그런데 1120년대에 나온 이 책은, 황당하게도 책을 최종 편집한 선사의 수제자에 의해 불태워진다.
실수로 한두 권을 불태운 게 아니다. 출간된 책들을 모두 모아, 작정하고 불을 붙인 것이다. 실화가 아니라 방화였다. 요즘 말로 하면, 정치적인 이유로 가끔 벌어지는 ‘책 화형식’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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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은 선(禪)의 신화적 창시자인 달마가 자신의 공덕을 뻐겨대는 양 무제를 하수 취급한 뒤 양쯔강을 건너가 9년 면벽에 돌입한 얘기에서 시작한다. 달마는 진리를 묻는 양 무제를 침묵으로 일갈한 후, 자리를 박차고 길을 떠나는데, 《벽암록》엔 이런 에피소드 100개가 빼곡하게 담겼다.
최종 편자 겸 저자 원오 선사의 해설과 그전에 100개의 에피소드를 처음 모은 설두 선사의 함축적 시들이 함께 담긴 진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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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불교의 정통을 이루는 ‘간화선(看話禪)’의 경전으로 보면 된다. ‘간화’는 ‘화두(話頭)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책을 왜 최종 편자 겸 저자의 제자가 불태웠을까. 대혜라 불리는 그 제자는 간화선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원오와 대혜의 시대엔 간화선과 계통이 다른 ‘묵조선(黙照禪)’이란 게 존재했다. 간화선은 화두를 붙잡는다. 묵조선은 침묵을 붙잡는다. 침묵을 중시한다는 건 화두 따위는 배격한단 뜻이다. 훨씬 간단한 선의 방식이고, 간단한 그만큼 더 강력한 깨달음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대혜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자기 쪽 사람들이 간화선을 한다고 하면서 입만 나불거리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선종의 한 무리가 간화선 대신 ‘구두선(口頭禪)’을 한다고 비아냥댔다. 간화선이 묵조선에 먹힐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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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가 그때 구두선 유행의 주범으로 본 게 《벽암록》이다. 《벽암록》엔 간화선의 걸출한 에피소드가 즐비하다. 수행자들은 화두를 붙잡고, 자신의 마음을 직관할 생각은 안 하고, 이 책만 달달 외웠던 것이다.
대혜는 결심했다.
차라리 《벽암록》을 없애자!
그는 닥치는 대로 모아 화형을 감행했다. 《벽암록》이 가까스로 부활한 것은 그로부터 150년이 지나서다. 판본 몇 권이 간신히, 화형을 모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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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무관한 ‘벽암록 소각 사건’ 이야기를 꺼낸 건 주역의 오용 때문이다. 주역에 관한 요즘 해설의 상당수가 고리타분하고 상투적이다. 시대착오적인 고답적 해설이 주역으로부터 생기를 빼앗고 말았다. 사람들은 생기 잃은 주역을 암송한다.
주역은 잘못 활용되고 있다. 《벽암록》의 사례를 소환한 건 그 때문이다.
머릿속 주역을 불태워야 한다.
주역은 그래야 부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