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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 친구, 그리고 나의 선택

by 주주쌤

3-1. 지우의 미소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

지우가 내 옆으로 걸어왔다.

"서연아, 오늘 재밌었지?"

환한 미소였다.

"응, 좋았어."

"그치? 우리 자주 이렇게 놀아야 하는데……."

지우가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 근데 세나 표정 봤어? 사진 찍을 때?"

"응?"

"되게 어색해 보이던데. 원래 예전부터 사진 찍는 걸 싫어했어. 귀엽긴 한데 좀 불쌍하더라."

지우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래도 네가 잘 챙겨줘서 다행이야. 서연이 너 진짜 착하다."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칭찬인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을까.

지우가 내 손을 톡톡 두드렸다.

"근데 너무 챙겨주면 세나가 너 귀찮게 할까 봐 걱정돼. 넌 원래 착해서 거절 못 하잖아."

"아, 그런가……?"

"응. 내가 널 너무 잘 아니까 하는 말이야. 넌 진짜 착하잖아. 나랑 비슷해!."

지우는 다시 활짝 웃으며 민지에게로 갔다.

벽에 비친 내 그림자가 겁에 먹은 듯 움츠렸다.


3-2. 세나의 눈물


다음 날 아침.

세나가 교실 구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찢어진 공책이 놓여 있었다.

"누가……?"

세나는 고개를 저었다. 눈시울이 붉었다.

"아니야, 내가 사물함에서 꺼내다가 실수로……."

거짓말인 게 보였다.

그때 지우가 지나가다가 멈춰 섰다.

"어? 세나야, 공책 어떡해. 괜찮아?"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괜찮아……."

"에이, 괜찮긴. 어떡하니. 새로 사야겠네. 민지야, 우리 학교 끝나고 세나랑 문구점 갈까?"

민지가 잠깐 망설이더니 말했다.

"어…… 나 오늘 학원 있어서……."

"아, 그렇구나. 아 맞다! 세나야, 미안. 나도 오늘 다른 약속이 있었네……. 혼자 갈 수 있지?"

지우가 미안한 듯 웃었다.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세나의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이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세나의 그림자가 책상 밑에서 작게 떨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마침 있던, 새 공책을 꺼냈다.

"세나야, 이거 써."

세나가 놀란 듯 나를 봤다.

"괜찮아?"

세나가 작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 서연아. 너 진짜……."

그때, 지우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환하게.

창문에 비친 지우의 그림자는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세나의 그림자가 나의 그림자 뒤로 살짝 숨었다.


3-3. 단톡방


저녁.

핸드폰에 알림이 떴다.

☆지우☆: 얘들아 내일 점심 뭐 먹을까?

☆민지☆: 난 아무거나!

☆다은☆: 나도~

☆지우☆: 서연이 너는 뭐 먹고 싶어?

☆서연☆: 나도 다 좋아~

☆지우☆: 에이 뭐야~ ㅋㅋ 서연이가 골라 줘!

☆서연☆: 그럼 떡볶이?

☆지우☆: 오 좋아! 근데 세나는 매운 거 못 먹지 않았어?

☆민지☆: 아 맞다

☆지우☆: 세나 배려해서 다른 거 먹을까? 서연아 괜찮지?

☆서연☆: 응 괜찮아~

☆지우☆: 역시 착해 ㅎㅎ 그럼 햄버거 어때?

☆민지☆: 좋아!

☆다은☆: 나도 찬성!

나는 핸드폰을 내려놨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지우는 세나를 배려하자고 했고, 나도 괜찮다고 했고…….

잘못된 게 없는데, 왜 기분이 이상할까.

창문에 비친 내 그림자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3-4. 도서관 약속


쉬는 시간.

세나가 내게 다가왔다.

"서연아, 점심시간에 도서관 갈래? 같이 책 보자."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지우가 우리 쪽으로 왔다.

"뭐 얘기해? 나도 끼워줘!"

"아, 점심시간에 도서관 가기로 했어."

내가 말했다.

"오, 좋다! 나도 갈래. 민지랑 다은이도 부를까?"

지우가 환하게 웃었다.

"응, 좋아!"

세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시간.

지우가 내 옆으로 왔다.

"서연아, 우리 먼저 갈까? 세나는 급식 당번이라 늦을 것 같던데."

"어? 그래? 그럼 기다릴까?"

"아니야. 세나한테 먼저 가 있는다고 할게. 우리가 자리 맡아 놓으면 되잖아."

지우가 세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세나야! 우리 먼저 가 있을게. 도서관으로 와!"

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복도를 걸었다.

그런데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어? 지우야, 어디 가?"

"아,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지우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민지와 다은이도 따라 들어갔다.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한참 후에 지우가 나왔다.

"아, 서연아. 나 배 아파. 보건실 좀 같이 가주라."

"어? 괜찮아?"

"응. 근데 세나한테 미안하네. 보건실 갔다가 빨리 가자."

지우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가 아프다는데 세나도 이해하겠지! 빨리 갔다가 도서관으로 가자."

민지가 거들었다.

"맞아. 세나는 책 좋아하니까 혼자 좀 보고 있어도 괜찮을걸?"

나는 망설였다.

"근데……."

"서연아, 제발. 나 진짜 배 아파."

지우가 내 손을 잡았다.

"응, 알았어.“

우리는 모두 다 같이 보건실로 갔다.

그렇게 지우를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은 끝나 가고 있었다.

종이 울렸다.

"어? 벌써?"

지우가 나왔다.

"세나가 기다렸을 텐데. 미안하다."

지우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우리 가서 세나한테 사과하자."

우리는 교실로 돌아갔다.

세나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세나야, 미안해. 내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지우가 세나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세나가 웃었다.

민지와 다은이도 "미안해, 세나야!"하고 말했다.

모두 미안해했다. 아무도 나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일까. 세나의 웃음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창문에 비친 세나의 그림자가 작게 웅크리고 있었다.

내 그림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3-5. 둘만의 시간


주말.

세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연☆: 세나야, 심심한데 우리 놀래?

☆세나☆: 진짜?? 좋아!! 우리 집 올래?

세나네 집은 따뜻했다.

세나 엄마가 웃으며 간식을 주셨고, 우리는 방에서 이것저것 얘기했다.

"서연아, 너랑 놀 수 있어서 진짜 좋아."

세나가 환하게 웃었다.

"요즘 학교에서……, 좀 외로웠거든. 근데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세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지우는……, 원래 저래?"

나는 잠시 멈칫했다.

"응?"

"아니, 그냥……, 착하긴 한데, 뭔가……."

세나가 말끝을 흐렸다.

"미안, 내가 이상한 말 했어."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서로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날,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 돌아오는 길.

저녁 노을이 길게 늘어진 내 그림자를 비췄다.

그림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마치 묻는 것처럼.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응, 행복해. 진짜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그림자는 잠시 멈춰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슬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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